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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래프트 3)너무나 많은 것이 걸려 있던 한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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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익명 조회 471회 작성일 2021-06-17 18:07: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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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게시판에서 헬로 apm이란 이름을 보고 옛날 생각이 나서 적어봅니다.



2004년 5월 27일, 온게임넷이 hello apm배 weg 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개최한 대회의 개막전이 열렸습니다. weg란 world esports games의 약자인데 이름 그대로 기존에 온게임넷이 개최하던 국내 대회의 틀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교류와 시장 확대를 꾀해보겠다는 의도였죠. 이렇게 말만 보면 그럴싸하긴 한데 실제로는 그냥 제2회 온게임넷 워3 프로리그 였습니다. 그것도 1회 대회인 슈마배 프로리그에 비하면 규모와 상금이 모두 크게 축소된 조그만 대회였고요. 단, weg라는 이름이 그저 공염불이었던 건 아닙니다. 당시 온겜은 게임계에서 떠오르던 시장인 중국을 목표로 삼아서 중국 게이머와의 교류, 대회 운영 등을 꾀하고 있었는데 그 일환으로 열렸던 대회가 바로 04년 여름에 열렸던 weg 한-중 대항전입니다. 왕년에 스타 깨나 보셨다는 분들도 이렇게 말하면 그런 대회가 있었나? 싶으실텐데 장밍루가 임요환 이긴 대회 라고 하면 설명이 될 겁니다.

헌데 뜬금없이 왜 온게임넷은 워3 대회에서 세계로 가자! 라는 거창한 구호를 걸었을까요. 그것도 모양에 안 맞게 대회의 규모를 크게 줄여가면서까지. 그건 당시 한국에서 워3대회가 무너져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02년 게임 발매 이후 많은 기대와 투자를 받았던 워3대회는 기대에 비해 신통치 못 한 결과를 내고 있었습니다. 반면 한 때는 워3에 밀려 사라질 거라는 위기의식마저 있었던 스타1은 점점 더 큰 인기를 모으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워3는 본래 한빛소프트에서 유통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확장팩에서는 완구회사였던 손오공으로 유통업체가 바뀝니다. 훗날 손오공의 사장이 블리자드에게 속았다. 블리자드가 워3 국내 판매량을 속여서 알려줬다. 탑블레이드가 대박나지 않았다면 회사가 망했을거다. 라고 인터뷰를 남겼는데 저 말의 진위는 둘째치더라도 손오공 입장에서 별로 돈이 되지 않는 장사였던 건 맞는 것 같습니다. 확장팩 발매 이후 손오공은 워3에 큰 기대를 걸고 꽤 많은 돈을 투입했습니다. 온게임넷, mbc게임에 각각 2번씩 4번이나 스폰서를 맡아 워3 대회를 열었고 pooh클랜의 팀원들과 계약하여 손오공 프렌즈 라는 팀을 만들었죠. 그러나 04년에 들어서 그런 시도들이 점점 실패로 드러나고 있었죠. 기대만큼 대회 흥행은 되지 않았고 팀들은 하나 둘 해체를 거듭했습니다.

그래서 온게임넷이 돌파구로 선택했던 것이 워3가 인기를 끌던 세계와의 연계였던 거죠. 외화내빈으로 치러진 이 hello apm배 weg 라는 쑥쓰런 대회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열린 hello amp배 weg 개막전은 지난 대회의 우승팀 손오공 프렌즈와 지니어스 슈로엣 코만도(GSK)의 대결이었습니다. 1경기 맵은 휴먼의 성지 로스트 템플이었고 손오공은 너무나 당연하게 한국 최고의 휴먼이자 지난 대회 mvp인 박세룡을 내보냈습니다. 이에 맞서는 GSK는 역시나 국내 최고의 언데드인 천정희를 출격시켰죠.

경기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당시 손오공 프렌즈와 박세룡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설명을 하고 넘어갑시다. 손오공 프렌즈는 한 마디로 말해 워3판의 지구방위대였습니다. 워3가 발매된 이후 이 대회 이전까지 양대 방송사에 주최한 팀 대항전은 총 5회 있었는데 그 5회의 대회에서 모조리 우승을 차지한 팀이었죠(CTB 1~3차 대회, 온게임넷 팀플대회, 온게임넷 프로리그). 정확히는 손오공에게 인수되기 이전 pooh클랜 시절과 합쳐서 말입니다. 그것도 아슬아슬하게 우승한 게 아니라 경기 내용도 압도적이었습니다. CTB 1,2차는 전승우승, 3차는 1패 후 우승, 온게임넷 프로리그는 전승+결승전 4:0 셧아웃 우승.

그리고 이 우주방위대 손오공 프렌즈에서도 가장 괴물 같은 성적을 내던 선수가 박세룡입니다. 팀대회가 아닌 개인전대회에서의 성과는 동료들에 비해 조금 떨어질지언정 그 또한 우승자 출신이었고 무엇보다 팀대회에서의 개인전 공헌도는 팀원 중 누구보다 뛰어났습니다. 본격적으로 박세룡이 출전하기 시작한 CTB 2,3차 대회와 프로리그에서 박세룡이 거둔 성적이 무려 16승 1패. 그 1패조차 승자연전 방식으로 치러지던 CTB 3차 대회에서 혼자 2킬을 거둔 후 당한 1패였으니 그야말로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승리를 따내던 필승카드였습니다. 단순 전적 뿐만 아니라 내용을 봐도 쟁쟁한 상대 에이스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팀이 패배의 위기에 몰렸을 때마다 승리를 따내며 팀을 구원하던 선수였죠.

이에 대항하는 GSK는 상대적으로 손오공에 비하면 일종의 신흥 강호 같은 팀이었습니다. 팀을 이끌던 쌍두마차 천정희와 황태민 둘 다 확장팩 이후부터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이었죠. 위에서 말한 손오공 프렌즈의 유일한 1패가 바로 CTB 3차에서 천정희, 황태민이 속해있던 세인트 팀에게 당한 것이었고요. 손오공으로서도 결코 방심 못 할 상대였습니다. 하지만 맵이 휴먼의 성지 로스트 템플이었고 더구나 박세룡이 출전한다는 사실에 팬들은 손오공의 패배를 생각지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게임이 시작되고...두 선수는 어느 정도 팽팽한 싸움을 하나 싶었지만 역시 박세룡이 앞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휴먼이 즐겨 쓰던 라이플맨+매지컬, 일명 라지컬이라 불리던 조합이 갖춰지고 여기에 공성병기 모탈팀이 합류하자 게임은 급격히 기울었죠. 박세룡은 천정희의 앞마당까지 밀고 들어가서 멀티를 날려버리고 언데드를 본진에 가둬버렸습니다. 천정희는 후속 병력으로 겨우겨우 박세룡의 병력을 회군시켰지만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이 시점에서 휴먼은 멀티가 둘이나 돌아가고 있었고 병력도 다 갖춘 반면 언데드는 멀티가 없었습니다. 언데드의 마지막 공격만 막으면 휴먼의 승리가 확실시 되었던 순간, 믿기지 않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박세룡의 본진 근처에서 열린 교전에서 휴먼의 병력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면서 언데드가 압승을 거두었고 이 여세를 몰아서 휴먼의 멀티와 본진까지 밀어버리며 게임을 끝내버린 것이었죠. 스타1로 치자면 6가스 먹은 이제동이, 혹은 맵의 절반을 먹은 이영호가 후반부에 아무것도 못 해보고 역전패를 당한 격입니다.

훗날을 기준으로 돌아보면, 이 경기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이 경기는 휴먼의 주전략이던 라지컬 조합, 더 나아가서는 휴먼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휴먼이 아무리 중반까지 앞서간다 해도 언데드가 對라지컬 조합인 디스트로이어+어보미와 3영웅 체제를 갖추면 밀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증명된 거죠. 문제는 당시 휴먼이 라지컬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고, 휴먼은 기나긴 암흑기를 걷습니다. 스1에서 장진남과 조용호 이후 더블넥의 재발견 이전까지 프로토스가 저그전에 안정적인 전략이랄 것이 없었던 시절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세계 최강이던 한국의 언데드들은 04~05년까지 휴먼을 쥐잡듯이 잡아댔고 휴먼은 대회에서 멸종위기로 몰렸으며 나엘 vs 언데드의 언나크래프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간간히 오크가 끼어드는 정도였습니다. 휴먼 게이머들은 그래도 박세룡이라면 뭔가 해줄 것이란 기대를 걸었으나 박세룡 또한 해답을 내놓지 못 하고 얼마 못 가 은퇴를 선언합니다. 이후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왔지만 완전히 변해버린 게임 환경에 적응하지 못 하고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 한 채 다시 은퇴해버리죠. 휴먼의 암흑기는 중국에서 스카이 라는 불세출의 천재가 타워로 초반을 버티고 3티어를 바라보는 새로운 체제의 정립을 이뤄낸 06년 이후에야 끝이 납니다. 그러나 이후로도 한국에서 세계대회 정상을 노려볼만한 휴먼 게이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지구방위대 손오공과 한국 워3판의 멸망의 전주곡이었습니다. 이 경기 이후 손오공 프렌즈는 거짓말처럼 몰락합니다. 2경기에서 팀플로 만회는 했지만 3경기에서 박세룡 못지 않은 믿을맨이던 이형주가 패하며 패배, 패자조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헥사트론 EX에게 1:2로 패배해 너무도 허망하게 대회에서 탈락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것이 지구방위대 손오공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손오공 프렌즈가 올리던 막강한 성적과는 별개로 유통사 손오공은 슬슬 워3에서 발을 빼고 싶어했죠. 그 해 가을, 손오공 프렌즈는 팀의 간판 이중헌과 박세룡의 은퇴 소식이 전해지며 소리소문 없이 해체되어 사라집니다.

그렇잖아도 악화일로에 놓여있던 워3 대회는 최고의 스타와 최강팀, 그리고 가장 든든한 후원사를 한꺼번에 잃으며 회생불능에 놓입니다. 워3에서 팀대회는 hello apm배 weg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았고, 온게임넷은 그 해 가을까지 스폰서를 찾다 찾다 실패하고 자체비용을 들여 마지막 워3대회를 개최한 후 워3에서 손을 떼죠. 이후에도 mbc게임을 비롯하여 몇 번의 워3대회가 국내에서 열렸지만 이미 한국은 워3를 키워낼 토양을 잃었고 결국 모두 실패로 끝나게 되죠.

마지막으로, 한국 워3의 세대교체를 상징합니다. 이 경기에서 박세룡을 이겨낸 천정희는 05년부터 본격적인 전성시대를 맞이했고 팀동료 황태민 역시 이중헌의 뒤를 잇는 오크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합니다. 한국에서의 워3는 죽었으나 두터운 한국의 선수층은 세계로 뻗어나가며 한국을 워3 최강국이자 하나의 대륙으로 만들었고요. 비록 이것이 한국 게이머들이 원하던 바는 아니었겠지만 말입니다. 덕분에 중국에선 공안의 호위를 받는 특급 스타 장재호가 한국에선 지하철을 타도 아무도 못 알아보는 웃지 못할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끝, 누군가에게는 시작. 이토록 많은 것이 교차한 경기는 세계 게임대회 역사를 통틀어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 것 같습니다.

김성연 지병걸 김병수 박세룡 원성남 이었죠. 근데 또 이게 마치 춘추오패나 삼황오제마냥 사람마다 약간씩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일단 제 기억으로는 저렇습니다.

제가 장빼루 때문에 조조의 불인불효 유재시거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능력만 있으면 뭘하나...

아크메이지 5인방은 진짜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우와아... 누구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호칭은 들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오창정 선수 포탈이 경기당 0.8회인가 뭐 이런거를 장빼루가 통계 내서 보여주고 그랬는데... 에휴...

제가 기억하는 것도 오뎃사 강서우 경기입니다

전지윤은 대회 시작하자 마자 양대리그 결승 가서 우승/준우승 차지하더니 그 후로 내리막이 빨랐죠. 그 후에 나타난 것이 아크메이지 5인방이었고요. 마치 워크 스토리에서 아라소르가 무너진 후 여러 왕국들이 나타난 것처럼요.

브레이브 팔라딘은 오창정입니다. 김동현의 10렙 워든쇼가 오뎃사에서 강서우 상대로 있었는데 제 기억엔 온겜에서도 워든쇼로 대박경기 만들었던 거 같습니다만 가물가물하네요.

그 이전에 왕이었으나 돌아오고는 영 그냥 그랬던 휴먼킹 전지윤 선수도 있었고 포탈 안쓰기로 유명한 오창...정이었나 종이었나 헷갈리네요 ㅠㅠㅠ 박세룡도 스토리가 많았지만 그 때 재미있는 스토리 정말 많았죠.. 세인트의 블링크워든 쇼도 진짜 충격이었었고... 으으.. @[email protected]

돌국대사, 쇼부라면, 스웨인. 그리고 용호상박...저 시절에 수많은 전설을 남겼죠. 장재호를 두 번 연속으로 주저앉힌 휴먼이었기에 휴먼 게이머들의 희망이자 별이었고요. 열악했지만 너무나 재밌었던 낭만의 시대. 정말 이야기 거리가 많은데 제대로 전해지지 못 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실제로 터틀락 옆자리인데 타워링 안 달린 경기 있지 않았었나요? 흐흐;;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세인트.. 저 경기복을 저는 세인트 팀으로 기억하는 데 아무튼 손오공 프렌즈의 아성에 도전하는 악당으로 스토리 텔링이 되었고 악당이 승리를 거두는 묘한 이야기 전개에 언데 팬으로서(...) 천정희와 세인트를 좋아하게 된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박세룡 특유의 공격성 등으로 "그래도 쇼부라면..."을 외치며 라면 많이들 끓이셨었지요.

그리고 저 때가 언데드의 거의 유일한 전성기 시절이었죠.. 그 전에는 마킹에게 맨날 구울꽃 피우고(...) 이후에는 타워에 밀리고 블마에 썰리느라 몹 취급 받았... ㅠㅠ

당시 타워링은 다듬어지기 전이어서... 성공률이 낮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라지컬 외의 타워링을 기반으로 한 부릉이나 타워링 기반의 투워크샵 플머. 핀드에 대항하는 디펜드 풋맨의 풋지컬 이후 나이트-모탈 조합으로 갈아타거나 하는 게 다 박세룡 한참 이후 전략들이었지요..ㅡ

워크래프트 발매와 거의 동시에 열린 리그에서
선수들이 신전략을 가지고 나와서 멋지게 이겨내는 장면을 보이리라고 생각한
리그 관계자들이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당시 스타를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에 사용자 그룹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리그가 진행되었고
그래서 패치 한 번 마다 판도가 바뀌고 그랬지요.
스타리그가 떴던 것도 브루드워 나온 이후였던 것을 생각하면
게임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버그나 밸런스 패치가 이루어진 이후 쯤에 리그를 진행했으면
좀 더 내실있는 리그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PC방 기반이 약해... 더 보기
워크래프트 발매와 거의 동시에 열린 리그에서
선수들이 신전략을 가지고 나와서 멋지게 이겨내는 장면을 보이리라고 생각한
리그 관계자들이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당시 스타를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에 사용자 그룹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리그가 진행되었고
그래서 패치 한 번 마다 판도가 바뀌고 그랬지요.
스타리그가 떴던 것도 브루드워 나온 이후였던 것을 생각하면
게임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버그나 밸런스 패치가 이루어진 이후 쯤에 리그를 진행했으면
좀 더 내실있는 리그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PC방 기반이 약해서 PC 게임 시장이 늦게 열린 중국에서 워크래프트가 지금도 성행하고 있는 것도
하다보니 타이밍이 맞추어진 결과라 생각합니다.

박세룡 이후에 살아남은 휴먼이 이종석인데 이 선수는 또 신기하게도 타워를 혐오하는 휴먼이었죠. 희망 밸런스 패치를 이야기 하는데 타워, 시즈엔진 너프를 이야기 했었고요. 터틀락 옆자리 걸리고도 타워링 안 달리는 휴먼은 이종석 뿐이라고 할 정도.

그 당시 휴먼이 타워만 박았다 하면 비매너 취급하던 한국의 풍조가 지대한 악영향을 불러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엔 타워와 밀리샤를 이용하는 방법 자체가 발전하기 이전이라서 타워를 썼어도 큰 효과를 보긴 힘들기도 했고요.

저 당시 휴먼은 언데드만 만나면 골로 가던 시기라... 욕을 먹건 말건 인피건설식 BTG휴먼이 빨리 자리잡았어야 언데전 버티면서 국내 휴먼이 살아남았을거 같은데, 그 당시 요상하게 휴먼이 타워박으면 욕하던 분위기가 있던 걸로...
나중에 인피건설이니 뭐니 비꼬는 말도 있었지만 인피가 낸 성과를 보면 프로에선 이기는게 장땡이죠.

사실 라지컬 말고도 하나 있지 않았나요..... 타워링...... 대회에서 쓸 순 없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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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탈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민트초코 좋아하는사람 특징.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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