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유책주의 VS 파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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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익명 조회 327회 작성일 2021-03-21 10:31: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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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기본적인 전제를 설명하자면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이혼에 관하여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서, 유책배우자가 결혼관계 파탄을 이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부부 중 한 쪽이 불륜을 저질렀을 경우, 그 불륜을 저지른 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이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문제였고, 굳이 입장을 묻는다면 저로서는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편이 옳지 않은가? 이미 파탄이 난 결혼관계를 굳이 유지할 필요가 있는가? 정도의 입장에서 파탄주의로의 판례변경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었습니다.... 만

최근에 판례집을 공부하다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대한 대법원 판례의 태도를 읽고는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대법원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논리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협의이혼을 인정하지 않는 파탄주의 채택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협의이혼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둘이 잘 합의를 봐라.)

2. 우리나라 법제에는 파탄주의의 한계나 기준, 그리고 이혼 후 상대방에 대한 부양적 책임에 관한 법률 조항이 없어서, 만약 파탄주의를 취할 경우 유책배우자를 위해 상대방 배우자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3. 간통죄를 폐지하는 대신 중혼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중혼에 대한 별도의 처벌규정을 두지 않은 우리나라의 법제상 유책주의를 도입할 경우 법률이 금지하는 중혼을 인정하게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말해 불륜관계로 다른 살림을 차린 배우자가 걸리적거리는(?) 배우자를 이혼으로 처리(?)해버리는 부조리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는 이야기.

4.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아니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 (즉, 예외사항을 두어 특수한 케이스는 배려하고 있다는 뜻)

음 저는 이 얘길 들어보니 이번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불허하는 법원의 태도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3번에 나온 가정을 파괴한 자(대개 이쪽이 경제적으로도 부유하죠)에게 이혼이라는 칼까지 쥐어주어서 두발 뻗고 잠까지 자게 해주겠다... 여기에 대해서는 솔직히 저항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위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거고, 이혼을 해본 적도 없고 아니 애시당초 결혼을 해본 적이 없는 입장에서는 뭐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들어보고자 글을 올려봅니다. 저도 계약의 판돈이 큰 것만으론 소용이 없다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하지만 상호 영향력이 큰 건 그저 판돈이 크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말씀처럼 영향력으로 따지면 몇조짜리 건물 매매가 훨씬 더 크겠지요. 단지 내가 타인에게 영향력이 많다는 이유로 내 자유를 못 누리는 거지같은 경우가 어딨습니까? 상대의 권리를 침해할 때나 그게 말이 되는거죠. 그렇다면 상대가 그 권리를 가지고 있냐를 따져야 하는데, 남으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할 권리라도 있는 건가요? 그런 것이 없으니, 결국 단순한 영향력의 문제 때문이 아닌 법적으로 보호할 특별한 약자인가의 여부에서 출발하는 것이지요. 그런 게 있어야 타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지요. 만일 사회적으로 보호 받을 특별한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면, 타인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건 그저 영향을 받는 쪽이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부부관계나 근로관계나 그저 판돈만 커서 특별한 요건이 적용되는게 아니죠. 사람값 얼마나 된다고 몇조원짜리 건물계약보다 해지가능성에 차이를 둡니까? 대체가능성과 일신전속성이 훨씬 중요한 요소입니다.

양방의 영향력이 대칭적이지 않으면 그게 강약관계입니다. 그 비대칭성이 우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라면 법적으로 케어할 만큼의 강약관계가 됩니다.
반면 상호가 큰 영향력을 미치는 관계라는 건 그냥 계약의 판돈이 크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판돈이 크다고 계약이 해지불가능한 대상으로 바뀌는 건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배상액이 커져야 할 뿐이지요.

저는 강/약으로 구별하는게 아니라 해당 계약이 당사자들에게 미치는 개인적 영향력을 구별기준으로 구별합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근로자 개개인이 중요한 요소는 아니죠. 그러나 근로자에게는 직장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회사->근로자의 일방적 계약해지를 제한하는 겁니다.

부부관계는 대등한 당사자 관계이고, 양방향으로 개개인이 서로 중요한 요소이고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 양방향으로 계약해지가 제한되는 것이지요. 어느쪽이 강하고 약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일방적 계약해지가 상대방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크기의 문제입니다. 회사와 근로자 사이에는 일방적인 강약이 있다면, 부부관계는 쌍방향으로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한 것이죠.

유책배우자를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 원래 누군가와 혼인을 하고 이혼을 하는 것이 인간 개개인이 마땅히 가질 자유라는 권리인거죠.

제가 알기로는 그런 회원권도 실이용기간 비용을 고려한 차액 정도는 해지와 환불이 됩니다. 환불이 안되는 경우는 실이용기간 비용+할인이 매입가격을 능가하는 경우 뿐이고, 이건 사실상 값을 이미 다 치룬 것에 해당하니 해지하거나 말거나가 되는 것이죠. 환불이 안될 뿐 당연히 해지는 가능합니다.
제가 언급했듯이 회사가 근로자를 해고 못하는 건, 근로자를 약자로 규정했기 때문에 가능한거죠. 반대로 직원이 회사를 퇴사 못하는 계약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시진 않으실 겁니다. 퇴사를 할 만큼의 회사측의 유책이 있어야만 퇴사할 수 있다는게 말이 되... 더 보기
제가 알기로는 그런 회원권도 실이용기간 비용을 고려한 차액 정도는 해지와 환불이 됩니다. 환불이 안되는 경우는 실이용기간 비용+할인이 매입가격을 능가하는 경우 뿐이고, 이건 사실상 값을 이미 다 치룬 것에 해당하니 해지하거나 말거나가 되는 것이죠. 환불이 안될 뿐 당연히 해지는 가능합니다.
제가 언급했듯이 회사가 근로자를 해고 못하는 건, 근로자를 약자로 규정했기 때문에 가능한거죠. 반대로 직원이 회사를 퇴사 못하는 계약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시진 않으실 겁니다. 퇴사를 할 만큼의 회사측의 유책이 있어야만 퇴사할 수 있다는게 말이 되겠습니까? 즉 노동법과 같이 강자/약자의 관계성을 전제해야만 "합당한 사유"가 필요하도록 계약 해지에 제한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혼인관계가 근로계약처럼 한 쪽이 일방적인 약자로 간주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물론 상호 합의하면 이혼 가능합니다. 상호 합의하에 사직할 수 있는 옵션만 열어두면, 강제로 퇴사 못하게 해도 됩니까?

콘도/골프장/체육시설 평생 회원권 같은 계약은 어떻습니까.
기간을 두어서 판매할 수도 있지만 평생으로 기간설정해 팔았으면 별도의 해지권이 없지요.

근로계약도 그렇지요. 해고사유가 있어야 해고할 수 있지요.
이혼사유가 있어야 이혼할 수 있고.

혼인도 페널티 치르고 계약종료가 가능합니다. 무슨 이혼이 없는 세상처럼 말씀하시는지.

몇년전 김주하 이혼할때 (결혼자체가 사기 결혼) 위자료 5천만원이 위자료 상한선이라는 기사를 읽고 기가 찼었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유책주의를 지지합니다.

매매는 돈 치루면 종결되는 계약이고, 종결 이후에 (원 계약에 문제가 없는 한) 해지 못하는 건 당연한거죠.
하지만 혼인은 혼인신고 후 종결되는 계약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의무와 권리가 작동하는 지속 계약입니다. 회사에 한번 입사하면 회사가 잘못 없으면 퇴사를 못한다거나, 집에 임대로 들어갔더니 집주인이 잘못 없으면 방을 못 빼는 것 등에 비교할 수 있겠지요. 이런 종류의 계약은 설령 과거 계약에 하자가 없었더라도, (패널티는 치루더라도) 당연히 계약 종료가 가능해야 합니다. 위의 비교 예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개인의 자유를... 더 보기
매매는 돈 치루면 종결되는 계약이고, 종결 이후에 (원 계약에 문제가 없는 한) 해지 못하는 건 당연한거죠.
하지만 혼인은 혼인신고 후 종결되는 계약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의무와 권리가 작동하는 지속 계약입니다. 회사에 한번 입사하면 회사가 잘못 없으면 퇴사를 못한다거나, 집에 임대로 들어갔더니 집주인이 잘못 없으면 방을 못 빼는 것 등에 비교할 수 있겠지요. 이런 종류의 계약은 설령 과거 계약에 하자가 없었더라도, (패널티는 치루더라도) 당연히 계약 종료가 가능해야 합니다. 위의 비교 예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노동법에서 기업이 직원을 함부로 해고를 못하게 한 것처럼, 유책주의는 혼인관계에서 일방이 약자라고 가정했기 때문에 존재한 옵션이지요. 과거에는 여성이 경제적 능력이 없었고 그 외 여러 문제가 있었으니 양보할 수 있더라도, 양자간 자유로운 결합으로 혼인을 이해하고 있는 요즈음의 현실에는 맞지 않지요.

그런 경우 바람 안난 쪽도 이혼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재산도 없고 바람피고 나랑 안 살겠다는 상대랑 살고싶어하는 사람은..

희귀병 걸린 남편 의료급여대상자 아니게 소득있는 자기랑 배우자상태로 둬서 필요약 국가보조 못받게해서 죽이려던 부인 말고는 못봤습니다. 유책주의의 예외로 이혼한 사례..ㅡㅅㅡ

그정도면(유책배우자가 무재산인 경우) 딱히 상대방 배우자도 미련이 없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이 부분은 제가 이혼소송의 실무를 해본게 아니라 뭐라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근데 파탄주의로 가더라도 아예 남자쪽도 재산이 없는데 바람이 난 경우는 어떻게 할까요
어차피 이혼 안시켜도 처의 생활보장이나 위자료 지급은 어차피 불가능한거 아닐까요
이런 경우는 어찌해야 할지...

대법원 판례가 이야기하는 예외라는 건 사실상 어느정도 중산층 이상에만 가능한거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현실적으로 지지리 가난한 하위층은 그냥 여자쪽도 쉽게 이혼해주는 경우가 많긴하겠지만)

본문을 읽고 드는 생각은 파탄주의를 선택하려면 이혼에 따르는 재산분할, 양육권 분쟁, 위자료에 대한 현실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귀책주의인 현재에도 이혼이 가능한 상황에서 유책배우자는 현실성 없는 위자료 때문에 더 마음껏 막 나갈 수 있지요. 싼 값에 이혼을 구매하기 위해서요. 예전 집 한채 값이 2~3천 할 때야 몇백만원이 의미가 있는 위자료였지 요즘 시대에 위자료 몇백~천몇백.. 이거 가지고 혼인을 파탄낸 행위에 대한 위로를 하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지요. 더욱이 재산분할이나 양육권이 유책배우자 여부와 상관없이 결... 더 보기
본문을 읽고 드는 생각은 파탄주의를 선택하려면 이혼에 따르는 재산분할, 양육권 분쟁, 위자료에 대한 현실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귀책주의인 현재에도 이혼이 가능한 상황에서 유책배우자는 현실성 없는 위자료 때문에 더 마음껏 막 나갈 수 있지요. 싼 값에 이혼을 구매하기 위해서요. 예전 집 한채 값이 2~3천 할 때야 몇백만원이 의미가 있는 위자료였지 요즘 시대에 위자료 몇백~천몇백.. 이거 가지고 혼인을 파탄낸 행위에 대한 위로를 하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지요. 더욱이 재산분할이나 양육권이 유책배우자 여부와 상관없이 결정되고 있다 보니 더 망나니 짓을 합니다. 10년을 같이 살면 혼전에 형성한 재산과 상관없이 재산분할은 무조건 반반.. 이게 무슨 개똥같은 기준입니까? 결혼을 할 때 더 많은 돈을 가져올수록, 가정의 윤택함을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 수록 재산분할이나 양육권 분쟁에서는 더 불리한 상황이 되는 현재 가정법에서 파탄주의를 채택한다면 합법적 꽃뱀, 합법적 제비를 만들어주는 길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파탄주의 지지자들은 한국이 예외적이라던데, 이런 속사연이 있었군요. 좋은 정보글 감사합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2는 과연 현실적으로 저게 가능한가? 싶기도 하고
3은 약간 황혼이혼? 삘이 나네요 ㅎ

그렇군요 실무에서는 또 그런 판타스틱한 일들이... 그럴싸하게 개인의 자기결정권이니 뭐니 포장하긴 하지만 결국에는 돈문제가 끼는 더티한 문제가 되는군요.

대법원 판례(2013므568 전원합의체)의 판결요지는

1.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일방의 의사에 따른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

2.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3. 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파탄 당시 현저하였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되어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산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를 설시하고 있습니다.

법알못이 여쭤보는데 4번에 말씀하시는 그 예외가 뭐죠?;;
hoxy 구체적인 예가 있읍니까?

그리고 뭐 좀 더티하게 말하자면.. 미리 맘먹고 하면 유책만드는건 별로 안 어려워요. 그 만든 유책으로 위자료는 못받아도 이혼자체는 거의 대부분 달성할 수 있음. 돈 싸게주고 이혼하려고 이러는거지 뭐..

오히려 계약 해지권은 없는게 보통인데요?
부동산매매만 해도 중도금 이후엔 해지못하는데.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굳이 여기서 더 유책배우자들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애초에 해지 못하는 계약이 존재한다는 개념부터가 골때리는 얘기지요.

저도 현 판례 태도가 적절하다고 봅니다. 현 판례는 유책주의 ㅡ 예외적 파탄주의 정도를 취하고 있어요. 유책주의의 부작용이라 볼만한 사례들은 대부분 예외적으로 해결되고, 다만 그 기간이 길어지고 불편할 뿐입니다. 그정도 불편은 유책배우자들이 감당할 몫이라 생각하고요.


며칠 전 조지 소로스의 자택에서 한 폭발물이 배달되어 뉴스를 탔는데 오늘은 힐러리 자택을 시작으로 오바마의 자택에 똑같은 폭발물이 배달되었고, 방금 전에는 CNN이 위치한 타임 워너 타워에도 해당 폭발물이 배달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CNN의 본사에선 전 직원 대피 중이고 앵커들은 자신들의 대피 과정을 중계 중입니다.


출처 : CNN 공식 유튜브. 이건 뉴스게시판에 더 어울릴 만한 글인 듯 하군요. 그래서 저는 뉴스게시판에 따로 관련 글을 올렸습니다.
https://redtea.kr/pb/pb.php?id=news&no=13103

금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학교내 폭력은 학교자체 종결제를 도입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6&aid=0001435645

학교내 폭력은 학교자체로 종결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이야기이지만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실제로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잘못을 해도 전학이상의 처벌은 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학이 처벌이라면 전학생은 범죄자로 인식되어야 할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qpPXuQz8Uc4

지금까지 학교내 폭력이 실제로는 학교내에서 원만하게 해결된 사례가 드물고
심지어는 피해자의 자살로 이어진 사건들이 있었죠.
(학교에서 원만하게 잘 해결되어서 알려진 사례가 드물다는 이야기가 나올수도)  

그래서 경찰의 신고로 해결하거나 심지어는 사적인 해결을 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학교폭력은 사적인 해결이 가장 효과가 있더군요.

하지만, 학교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태에서 과연 학부모들의 동감을 얼마나 받아낼지 궁금해집니다.

특히  숙명여고 사건처럼 학교에 대한 저 신뢰를 확신으로 바꾸는 사건이 있다면 말이지요.  
  
지금의 부모세대들은 학교에 대한 신뢰가 아주 낮습니다.
뭐 저도 학교에 가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육을 받는 것인지,
매를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학생을 잘 때리는 열정적인 교사가 교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죠.  
그런 상황에서 신뢰를 떨어뜨리는 숙명여고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하였으니

문제는 신뢰인데,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힘을 잃을 수 밖에 없죠.  

그렇게 학교폭력 근절해야한다 말만 하고 실질적인 대책도 없으면서 오히려 피해자들 희화화하는 경우도 많은 대한민국이라 뭐 별로 놀랍진않네요.

학교든 군대든 어떤 조직이든간에, 불미스런 사건을 내부적으로 조용히 처리하겠다는 것은 대개 피해자에게 희생을 강요하여 아무 일 없었던 듯 넘어가겠다는 말과 동의어죠.

폭력 사건에 왜 학교란 말을 붙여서 학교라는 바운 더리 안에 가두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폭력 문제라고 생각하고 사법처리를 해야지 학생이라는 신분이라고 봐줘야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학폭위를 객관성 있거나 전문성을 띈 인사구성 하기도 힘들구요.

승진안된다고 은폐엄폐가 특기 아녔나요?

??? : 좋은게 좋은거 아이가?!

저게 왜 도입됐는지는 알겠더군요. 결국 학폭의 수위, 상황 판단이 문제인데 그냥 이걸 학교 외부 기관으로 온전히 이전시키는게 나을 거 같은데...

보자마자 이건 뭔 미친 소리인가 싶었는데... 뭐랄까 이젠 욕할 기력도 없네요.

한국 사회 전반에 신뢰라는 것이 실종되었어요. 아이들 다니는 학교까지 그렇죠. 그리고 신뢰가 깔려있지 않으면 어떤 제도도 어떤 캠페인도 답이 없죠.

저자: 시어도어 카진스키
출처: Anti-Tech Revolution: Why and How

Why the Technological System will destroy itself

“최근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압도적인 승리와, 최후의 국제적 합의에 도달한 덕분에 행복한 ‘역사의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순진한 우화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완전히 다른, 완전히 새로운, 두려운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음을 보고, 느끼고 있다.” - 알렉산더 솔제니친

“자연에게 있어, 권력은 권리의 본질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I. 이 책에서 다루어진 대부분의 논리들은 충분히 탄탄하다. 하지만 이 장에서, 우리는 위험을 감수해 가정들을 세우고, 가정으로부터 추론을 이끌어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과 추론들이 인간 사회의 미래에 대한 그럴듯한 결론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진실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논리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두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첫째, 우리의 가정들과 추론들은 현재의 대규모 복잡 사회의 발전에 충분히 합리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둘째, 누구든지 현대 사회의 미래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장에서 다루어진 논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비록 우리는 여기서 복잡 사회에서의 경쟁과 자연선택 과정에 주목하고 있지만, 우리의 관점을 (지금은 폐기된) “사회진화론”과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진화론은 사회 발전의 자연선택적 요소만을 다루지 않았다. 사회진화론은 “적자생존”의 승자들을, 패배자들보다 우월한 인간이라고 간주했다:

“기업 간의 경쟁적 투쟁은 그저 기업인으로써가 아니라, 문명의 챔피언으로써 누가 가장 “적합”한지 겨루는 시합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기업인들은 그들의 물질적 우월감을 도덕적, 지적 우월감으로 바꾸었다… 사회진화론은 누군가는 권력을 쥐고 누군가는 빈곤으로 추락하는 경쟁 과정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이를 정당화 하는 수단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 발전에 자연선택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우리는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자들에 대한 어떠한 긍정적인 가치 판단도 하지 않는다.

II. 우리는 여기서 자가증식 체제에 대해 다룰 것이다. 자가증식 체제는 스스로의 생존과 증식을 추구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체제는 둘 중 하나의 방향으로 증식한다: 체제는 끝없이 스스로의 크기와 힘을 키워나가거나, 자신의 특성을 새로운 체제에게 물려준다.

가장 분명한 자가증식 체제의 사례는 생물학적 유기체들이다. 예를들어, 늑대 무리와 꿀벌군체 같은 생물학적 유기체들의 ‘집단’ 역시 자가증식 체제가 될 수 있다. 이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자가증식 체제는, 예를들어, 국가, 기업, 노동조합, 종교, 정치적 정당 같은 인간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학파, 사회관계망, 서브컬쳐 집단 같은 뚜렷하지 않고 조직화되지 않은 집단들이 있다. 개별의 늑대, 벌에게는 자신의 집단을 증식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없지만, 늑대무리나 꿀벌군체가 스스로 증식하는 것처럼, 인간 역시 개인에게는 자신의 집단을 증식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없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을 증식시킨다.

(자가증식 여부와는 별개로) A와 B가 어떤 형태의 체제이고, A가 B의 부품일 때, A를 B의 하위체제라고 하고, B를 A의 상위체제라고 하자. 예를들어, 수렵채집인 사회에서, 개인은 무리에 속해있고, 무리는 부족에 속해있다. 개인들, 무리들, 부족들은 모두 자가증식 체제이다. 개인은 무리의 하위체제이고, 무리는 부족의 하위체제이다. 부족은 부족에 속한 무리들의 상위체제이고, 각각의 무리는 무리에 속한 개인들의 상위체제이다. 또한 각각의 개인은 부족의 하위체제이다. 부족은 부족에 속한 무리들에 속한 개인들의 상위체제이다.

자연선택의 법칙은 생물학에만 적용될 뿐만 아니라, 자가증식 체제가 존재하는 모든 환경에 적용된다. 이 법칙은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생존과 증식에 최적화된 특성을 가진 자가증식 체제들이 다른 자가증식 체제들보다 더욱 잘 생존하고 증식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건 동어반복이고, 새롭게 알려주는 것이 없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요소들에 집중하게 해준다.

우리는 여러 개의 전제들을 제시할 것이다. 우리는 이 전제들을 증명할 수 없지만, 이들은 직관적으로 타당하며, 생물학적 유기체들과 (형식적이든 비형식적이든)인간 집단들로 대표되는 자가증식 체제들의 행동을 통해 관측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이 전제들이 참, 혹은 충분히 참이라고 믿는다.

전제 1. 어떤 환경이든 충분히 풍족하면, 자가증식 체제들이 등장할 것이며, 자연선택으로 인해 대단히 복잡하고, 절묘하고, 정교한 생존, 증식 수단을 가진 자가증식 체제들이 진화할 것이다.

자연선택은 상대적으로 특정 기간에 작동한다. 어떤 지점을 영점이라고 부르자. 영점으로부터 5년동안 (다른 자가증식 체제들과의 경쟁 속에서)생존하고 증식하는데에 가장 적합한 자가증식 체제들이 영점으로부터 5년동안 가장 잘 생존하고(또는 생존을 잘하는 자손을 갖고) 증식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영점 이후 30년간 (5년동안은 경쟁없이)생존하고 증식하는데에 가장 적합한 자가증식 체제들하고 반드시 같지는 않을 것이다. 유사하게. 영점으로부터 30년간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체제들은 처음 30년은 경쟁 없이, 2백년간 생존하고 증식해온 체제들과 반드시 같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들어, 숲으로 덮인 지역에 서로 경쟁하는 작은 왕국들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더 많은 농지를 확보하는 왕국들이 더 많은 작물을 키울 수 있고, 다른 왕국들보다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다. 이는 그들에게 군사적 우위를 가져다 준다. 어떤 왕국이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벌목을 자제한다면, 그 왕국은 군사적으로 불리해지고, 더 강한 왕국들에 의해 제거될 것이다. 따라서 망설임없이 나무들을 베어버리는 왕국들이 그 지역을 지배할 것이다. 지나친 벌목은 생태학적 재앙을 가져올 것이고, 결국 모든 왕국들은 멸망할 것이다. 왕국들에게 단기간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심지어 필수적이기까지 한 무차별적 벌목이 장기적으로는 왕국을 종말로 이끈다.

이 사례는 자가증식 체제가 스스로의 장기적 생존과 증식을 위해 선견지명을 발휘하면, 단기적 생존과 증식에 제한을 받게되고, 이 체제는 단기적 생존과 증식을 무제한으로 추구하는 다른 자가증식 체제들과의 경쟁에서 불리해짐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다음 전제에 도달한다:

전제 2. 단기적으로, 자연선택은 장기적인 결과에 신경쓰지 않고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가증식 체제들을 선호한다.

이 전제는 다음의 전제로 이어진다.

전제 3. 주어진 상위체제의 하위체제들은, 자신의 상위체제와 상위체제에 만연하는 조건들에 의존한다.

이는 상위체제가 무너지거나, 상위체제의 환경이 급격하게 변한다면 하위체제들은 생존, 증식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충분한 선견지명을 갖고 있는 자가증식 체제는 상위체제가 무너지거나, 불안정해지더라도 스스로와 그 자손들의 생존을 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상위체제가 안정정으로 유지되는 한, 자연선택은 상위체제에서 최대한 많은 이득을 챙기는 하위체제들을 선호하고, 상위체제가 불안정해지는 상황을 대비하는데에 자원을 “낭비”하는 하위체제들을 불호한다. 이런 환경에서, 하위체제들은 자신들이 속한 상위체제가 불안정해질 때 생존하기 대단히 힘들어질 것이다.

이 장에서 제시한 다른 전제들과 마찬가지로, 전제 3 역시 상식으로 뒷받침된다. 만약 상위체제가 약하고 느슨하게 조직되었거나, 하위체제들의 환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하위체제들은 상위체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특정 지역의 수렵채집인들은, 하나의 핵가족이 자신이 속한 무리의 도움 없이 생존하고 증식할 수 있다. 수렵채집 부족들은 느슨하게 조직되었기 때문에, 거의 언제나 수렵채집인 무리들은 자신이 속한 부족과는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노동조합들은 AFL-CIO 같은 노동조합연맹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생존할 것이다. 이는 노동조합들의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활동을 보장하는 법률과 헌법이 폐지되거나, 현대산업사회가 무너질 경우 노동조합들은 생존할 수 없다.

체제의 부품들이 서로 신속하게 소통하고 물자를 공급할 수 없다면, 체제가 스스로의 생존과 증식을 위해 효과적으로 조직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또한, 자가증식 체제는 자신의 모든 부품들로부터 신속하게 정보를 얻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따라서,

전제 4. 이동, 통신 문제는 자가증식 체제가 그 기능을 확장할 수 있는 지리적 범위에 한계를 둔다.

인간의 경험에 따르면:

전제 5. 활용 가능한 이동, 통신 수단의 한계는 자가증식 인간 집단의 지리적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가장 일관적으로 중요한 한계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자가증식 인간 집단이 활동범위를 최대로 넓히지는 않지만, 자연선택은 활용 가능한 이동, 통신을 이용해 활동 범위를 최대로 확장하는 자가증식 인간 집단을 만들어낼 것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 전제 4와 전제 5를 확인할 수 있다. 원시인 무리나 부족은 보통 그들의 “사유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에서 유일한 이동 수단은 인간의 다리이기 때문에, 그들의 영토는 상대적으로 작다. 하지만, 북미 원주민과 같은, 평야에서 살면서 많은 수의 말을 갖고 있는 원시인들은 훨씬 큰 영토를 갖는다. 산업화 이전 문명의 제국들은 넓은 영토를 갖고 있었지만, 이들은 상대적으로 빠른 이동통신 수단을 갖고 있거나, 발명했었다. 이 제국들은 특정 지리학적 크기에 도달한 후, 확장을 중단하고, 불안정해지고, 여러 개의 작은 정치 집단들로 쪼개지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이 제국들이 확장을 중단하고 불안정해진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이동통신 수단들이 한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지구상의 어느 두 지점이든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실시간에 가까운 통신이 가능하다. 따라서,

전제 6. 현대에는, 자연선택은 지구 전체에서 활동하는 자가증식 인간 집단들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인류가 언젠가 기계나 다른 존재에 의해 대체되더라도, 자연선택은 여전히 지구 전체에서 활동하는 자가증식 체제들을 만드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이 전제를 강하게 확인해준다: 우리는 세계적 “초강대국들”, 다국적 기업들, 세계적 정치 운동, 세계적 종교들, 세계적 범죄조직 등을 보고 있다. 우리는 전제 6이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 아닌, 자가증식 체제의 일반적인 성질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인류가 다른 존재에 의해 대체되더라도 이 전제는 참일 것이다: 자연선택은 전지구적 활동을 하는 자가증식 체제들을 만들고 유지할 것이다.

이런 체제들을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라고 부르자. 전세계적인 고속 통신망의 등장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최근에 발생한 현상이며, 그로 인한 결과는 아직 전부 등장하지 않았다. 미래에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전제 7. (오늘날처럼) 이동통신 수단 문제가 자가증식 체제가 활동할 수 있는 지리적 범위에 유의미한 제한을 두지 않을 때, 자연선택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자가증식 체제에 힘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 전제 역시 인류의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전제는 인간과는 독립적으로 참이다: 자연선택은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 중 가장 강한 힘을 갖고 있는 체제를 선호할 것이다. 약한 세계적 또는 대형 자가증식 체제들은 제거당하거나 종속당할 것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자가증식 체제가 보기에 보잘것 없는 소형 자가증식 체제들은 어느정도의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역적 영향력만을 갖을 것이다. 소형 자가증식 체제들이 연합할 경우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에게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형 자가증식 체제들의 연합이 전세계적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다면, 그 연합 자체가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가 될 것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서로 기능적 관계를 맺는“세계-체제”에 대해 말해보자. 세계-체제는 자가증식 체제로 여겨져선 안될 것이다. 세계-체제가 자가증식 하는지 안하는지의 여부는 지금으로서는 중요한게 아니다.

요약하자면, 세계-체제는 상대적으로 몇 안되는 극도로 강력한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의 지배를 받는 상태로 다가가고 있다. 이런 세계적 체제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힘을 갖기위해 경쟁할 것이다. 그들은 장기적 결과는 무시하고 단기적인 힘을 추구할 것이다(전제 2). 이러한 조건에서,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의 격렬한 경쟁이 세계-체제를 찢어버릴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직관을 자세하게 설명해보자. 수십억년 동안 지구의 환경은 변하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 안정성을 갖고 있었다. 이 환경에서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와 같은 복잡한 생명체가 진화할 수 있었다. 가까운 미래에, 이 행성의 모든 자가증식 인간 집단들과,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완전한 기계기반 체제들은 유사하거나, 좀더 넓은 범위 내에서 진화할 것이다. 전제3에 의하면, 지구의 자가증식 체제들은 이 범위 내의 조건들에 의존해 생존할 것이다. 기계기반 자가증식 체제들 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인간 집단들 역시 최근 세계-체제가 조직된 조건들에 의존할 것이다. 예를들어, 경제적 조건들 말이다. 이 조건들의 급격한 변화가 어느정도 제한되지 않는다면, 자가증식 체제들은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의 조건들이 이 제한을 살짝 넘는다고 해서 전세계의 자가증식 체제들이 모두 죽을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제한을 충분히 넘는다면, 많은 자가증식 체제들이 죽을 것이다. 만약 조건들이 제한을 심하게 넘는다면 전세계의 모든 복잡한 자가증식 체제들을 자손없이 죽을 것이다.

전세계에 뻗어있는 현대 기술의 압도적인 힘으로 무장한 채 장기적 결과는 무시하고 즉각적인 권력을 위해 경쟁하는 여러 개의 자가증식 체제들을 고려할 때, 지구상의 모든 복잡한 자가증식 체제들이 자손 없이 죽을 정도로 이 행성의 환경을 이전과는 한참 다르게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의 등장에는 전세계적인 고속, 장거리 이동통신 수단이 결정적인 요인이었음을 주목하라. 지금 상황이 세계-체제의 급격한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볼 수 있는 다른 시각도 있다. 산업재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체제가 재앙적인 붕괴를 겪으리라는 것을 안다. (i)체제가 고도의 복잡성을 띄고 있다.(이는 작은 붕괴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ii) 체제가 팽팽하게 연결되어 있다.(이는 체제의 한 부분의 붕괴가 다른 부분으로 빠르게 퍼짐을 의미한다.) 세계-체제는 옛날에도 복잡했었다. 새로운 요소는 전세계적인 이동통신 수단이다. 이로 인해 지금 세계-체제와 모든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은 팽팽하게 연결되어 있다. 비교적 최근까지, 자가증식 체제들은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었다. 따라서 그들 사이의 경쟁으로 인한 파괴적인 효과 역시 지역에 국한되었다. 오늘날,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은 전세계에 걸쳐 경쟁하기 때문에, 그들은 팽팽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체제가 그 자체로써 팽팽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기술이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에게 압도적인 힘을 주기 때문에, 세계적 재앙이 조만간 찾아오리라는 것은 거의 명백하다.

이 주장에 대해서,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 간의 파괴적 경쟁이 불가피한건 아니라는 반론이 예상된다: 하나의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가 모든 경쟁자를 제거하는데 성공하고 세계를 홀로 지배할 수도 있다. 아니면,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가 몇개 없기 때문에, 위험하거나 파괴적인 형태의 경쟁을 자제하자는 합의에 도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합의에 대해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그런 합의를 도출하고 시행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한번 봐라: 오늘날의 세계의 주요 세력들은 핵무기 제거나 이산화탄소 배출 제한에 관해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한번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모든 경쟁자들을 제거한 하나의 통일된 체제가 등장해 세계를 지배하거나, 여러개의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이 파괴적인 경쟁을 중단하자는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이렇게 얻은 “세계 평화”는 별도의 세 가지의 이유로 인해 불안정할 것이다.

첫째, 세계-체제는 여전히 고도로 복잡하고 팽팽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학자들은 산업 체제를 만들 때 “비동조화(decoupling)”라는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권한다. 비동조화는 체제의 한 부분에 발생한 결함이 다른 부분으로 전달되는 것을 막는 “장벽” 역할을 한다.화학공장, 원자력 발전소, 금융 시스템과 같은 세계-체제의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하위체제에 대해서는 이론상으로 이런 수단들이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페로우(Perrow)는 우리 사회의 이런 제한적인 체제들조차도 붕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재설계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체제 전체는 더욱 복잡해지고 연결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을 되돌리고 세계-체제를 “비동조화”하기 위해선 전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발전을 규제하는 정교한 계획을 설계, 시행, 집행해야한다. 우리가 이 책의 1장에서 길게 설명했듯이, 그러한 계획은 절대 성공적으로 실현될 수 없다.

둘째, “세계 평화”를 얻기 전에, 그리고 스스로의 생존과 증식을 위해, 해당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상위체제)의 하위 자가증식 체제들은 상위 체제에(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가해지는 외부위협에 맞서 통일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서로 간의 갈등을 중단하거나 완화시켜야할 것이다. 사실, 자신의 강력한 하위 자가증식 체제들의 경쟁을 완화시키지 못했다면 그 상위체제는 애초에 성공적인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가 경쟁자들을 제거하거나, 다른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과 위험한 경쟁을 하지 않기로 합의하면, 자가증식 체제를 통합시켰거나, 체제 내부의 경쟁을 완화시켰던 “즉각적인” 외부위협이 사라질 것이다. 자가증식 체제들은 장기적 결과와는 상관없이 경쟁한다는 전제 2에 따르면, 해당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 내부의 강력한 하위 자가증식 체제들 사이의 파괴적인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세상의 사건들, 전쟁과 혁명들은 집단에 의해 수행된다.”고 지적했다. 프랭클린에 따르면, 각각의 “집단”들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한다. 하지만 “일단 집단이 충분한 이익을 얻고나면”, 따라서, 더 이상 외부로부터 위협당하지 않을 때, “각각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방해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하고, 집단은 분열되고, 혼돈이 찾아온다.”

역사는 거대한 인간 집단들은 당면한 외부의 위협이 없을 때 작은 집단들로 분열하며, 장기적 결과에는 신경쓰지 않고 경쟁하는 강한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여기서 주장하는 바는, 이런 경향이 인간 집단 뿐만 아니라, 자연선택의 영향 하에 있는 자가증식 체제에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향은 인간의 성격적 결함과는 무관하며, 설령 소위 인간의 결점들이 “치료”되거나, (기술성애자들이 원하는대로)인간이 지적인 기계들로 대체되어도 이 경향은 계속될 것이다.

세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상위체제에 가해지는 외부의 위협 없이도 강력한 하위 자가증식 체제들이 파괴적인 경쟁을 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래도 여전히 위에서 묘사된 “세계 평화”는 다른 이유로 인해 불안정할 것이다.

전제 1에 의해, “평화적인” 세계-체제의 내부에서, 자연선택에 따라, 지배적인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교묘하고 정교한 수단, 또는 들켰을 때 억압을 피할 수단을 갖고 있는 새로운 자가증식 체제가 등장할 것이다. 애초에 자가증식 체제들의 등장을 가능케 했던 진화의 과정과 똑같은 과정을 통해, 새로운 자가증식 체제들은 점점 더 강해지다가, 결국에는 기존의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에게 도전할 정도로 강력한 체제가 등장할 것이다. 이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파괴적인 경쟁이 지속될 것이다.

설명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우리는 이 과정을 단순하게 묘사했다. 마치 애초에 세계-체제가 비교적 위험한 경쟁으로부터 자유롭게 형성되고, 그 다음에야 새롭게 등장한 자가증식 체제들에 의해 제거될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현존하는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과 함께 새로운 자가증식 체제들이 등장할 것이고, 앞서 가정한 “세계 평화”를 막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이 현상을 직접 보고있다. 가장 분명한 사례는, 법률과 질서에 도전하고 있는 어떠한 이상적 동기도 없는 범죄조직들 뿐만 아니라 테러리스트 네트워크, 해커 단체 같은 (비교적)새로운 자가증식 체제들이다. 마약 카르텔들은 멕시코의 정상적인 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을 공격한 테러리스트들 역시 그러했다. 이라크 같은 나라에서 테러리스트들은 더욱 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무법적 자가증식 체제들은 케냐의 마약 카르텔들 처럼 주요 국가들을 장악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정치적 “기계”들은 반드시 범죄조직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보통 어느정도의 불법활동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정부의 “합법”적 구조에 도전하거나, 심지어 장악하기까지 한다.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는, 완전히 합법적인 수단, 또는 그들의 목적을 위해 최소한의 불법적 수단을 사용하고, “민주주의”, “사회정의”, “번영”, “도덕”, 또는 종교적 원칙과 같은 나름대로 정의로운 이유를 들며 자신의 수단을 정당화하는 더욱 중요한 자가증식 체제들이 등장할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전적으로 합법적인)초강경 근본주의 종파가 놀라울 정도로 강해졌고, 지금까지 세속적이었던 국가의 가치와 목표를 전복하려는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그리고 완벽하게 합법적으로)등장했다. 그들은 고작 19세기 후반부에 등장했다. 지금도 새로운 기업들이 형성되고 있다. 일부는 낡은 기업들에게 도전할 정도로 강해진다. 지난 수십 년 간 많은 기업들이 국제화되었고, 그들의 힘은 국가권력과 맞먹기 시작했다.

정부가 자신의 목표를 위해 만든 종속체제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가증식 체제로 변하고, 심지어 정부를 지배할 수도 있다. 관료들은 보통 그들의 공적 책임을 완수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권력과 안정을 유지하는데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모든 관료제는 자신을 보전하고, 기생하려는 경향을 갖게된다. 또한 관료제는 자신의 권력, 자율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갖게된다. 이로 인해 정부는 관료에 대한 통제를 잃게된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관료제는 지배 권력이 되었다. 군부는 많은 경우에 상당한 정도의 자율성을 부여받고, 정부를 대체하고 나라의 지배적 정치권력이 된다. 요즘에는 노골적인 군사 쿠데타가 과거에 비해서 인기가 없는 것 같다. 정치적으로 세련된 장군들은 민간정부를 꼭두각시로 내세우고 배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선호한다. 장군들은 공공연하게 개입해야할 필요가 있을 때, “민주주의”나 비슷한 이상을 위하고 있노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파키스탄과 이집트에서 이런 형태의 군사 지배를 볼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서 등장한 두 개의 완전히 합법적인 자가증식 체제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좌파와 교조적인 우파이다.(과거의 미국에 존재했던 자유주의, 보수주의와 헷갈려선 안된다.) 이 책은 두 집단의 투쟁 결과에 대해 논하는 자리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알 카에다의 모든 폭탄들과 멕시코 마약 카르텔들의 모든 살인들의 총합보다, 이들의 치열한 투쟁이 평화로운 세계질서 건설을 더욱 극심하게 방해할 것이라고 언급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냉혹한 현실을 직면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앞에서 설명한 파괴적 경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막도록 세계-체제를 설계하고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길 원할 것이다. 하지만 1장에서 우리는 왜 그런 계획이 결코 현실에서 시행될 수 없는지 설명했다. 예상되는 반론은, 포유류(또는 다른 복잡한 생명체)가 소위 세포라는 수백만개의 자가증식 체제들로 이루어진 자가증식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암이 발생하지 않는 한) 동물의 신체 내부에서 세포 또는 세포집단 간의 파괴적인 경쟁은 없지 않냐는 것이다. 경쟁 대신, 모든 세포들은 전체의 일부로써 동물의 이익을 위해 충실하게 복무한다. 또한, 외부의 위협 없이도 동물의 세포들은 그들의 의무에 충실하다. 세계-체제를 포유류의 신체처럼 설계해서, 자가증식 체제들 간의 파괴적 경쟁을 막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유류의 신체는, 수억 년의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의 산물이다. 이는 수억 년 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세대 교체 기간을 Δ라고 가정한다면, 첫 세대 중 Δ시간 동안 두번째 세대를 생산해낸 개체들만이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세번째 세대까지 살아남은 혈통들은 오직 2Δ 시간의 시험을 통과한 혈통들 뿐이다. 네번째 세대까지 살아남은 혈통들은 오직 3Δ 시간의 시험을 통과한 혈통들 뿐이다. 이렇게 계속 이어진다. n번째 세대까지 살아남은 혈통들은, 더 짧은 시간을 통과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오직 (n-1)Δ 시간의 시험을 통과한 혈통들 뿐이다. 앞선 설명은 무리하게 간략화되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기 위에선, 유기체의 혈통이 수천만년간 짧은, 중간의, 긴 모든 범위의 시험들을 통과해야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자면, 유기체의 혈통은 일련의 수백만개의 필터들을 통과해야 한다. 다양한 길이의 각각의 필터에서 (다윈주의적 의미에서) 가장 “적합”한 혈통만이 통과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만을 통해 동물의 혈통을 짧은 기간, 중간 기간, 긴 기간 생존하도록 만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역학을 지닌 포유류의 신체가 진화될 수 있었다. 이 역학에는 동물의 신체 내부에서 세포 또는 세포 집단 간의 파괴적 경쟁을 막는 역학도 포함된다.

또한 생물학적 유기체의 세대마다 많은 개체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멸종 직전까지 간 종들은 개체 수가 몇천 정도로 줄었던 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포유류들은, 다세포 유기체가 등장한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진화 역사를 통틀어 각 세대는 언제나 “적합”한 수백만의 개체수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자가증식 체제들이 세계적 규모에 도달하면, 두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발생한다. 첫번째 차이점은 “적합”한 개체 수의 차이다. 세계를 지배할 만큼 충분히 거대하고 강력한 자가증식 체제들은 수십 개 혹은 수백 개에 불과하다. 분명, 백만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적합”한 개체 수가 지나치게 부족함으로 인해, 지배적인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 간의 자연선택 과정은 비효율적일 것이다. 생물학적 유기체의 경우, 개체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대형 종들은, 개체 수가 많은 소형 종들에 비해 멸종에 더욱 취약하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할 것이다. 비록 생물학적 유기체들과 인간의 자가증식 체제들 간의 비유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지만, 몇개의 지배적인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로 이루어진 세계-체제의 장래는 어두워 보인다. 두번째 차이점은 전세계적 고속 이동통신 기술의 부재이다. 소규모 자가증식 체제의 붕괴 또는 파괴적 행동은 오직 지역적 영향만 주었다. 그러한 자가증식 체제의 제한된 활동 영역을 벗어나면, 다른 자가증식 체제들의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는 계속된다. 하지만 전세계적 고속 이동통신 기술로 인해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이 등장했고, 그러한 체제들 중 하나의 붕괴 또는 파괴적 행동은 세계-체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의 시행착오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횟수의 “시도”가 “오류”를 낳을 가능성이 높고, 세계-체제는 붕괴하거나 심각하게 망가져서 세계의 모든 대규모 복잡 자가증식 체제들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자가증식 체제들에게 있어서 시행착오 과정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이 내부의 복잡 생물학적 유기체들 간의 파괴적 경쟁을 막는 정교하고 복잡한 역학을 갖출 수 있게 해줄 충분히 긴 자연선택은 불가능하다.

한편, 세계적 자가증식 체제들 간의 격렬한 경쟁은 지구의 기후, 대기구성, 해양 성분에 극단적이고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생물권에 대단히 파괴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이 장의 Part IV에서 우리는 이 사안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볼 것이다. 우리는 기술적 세계-체제의 발전이 그것의 논리적 귀결점에 도달할 때까지 내버려둘 경우, 지구는 세균, 해조류 같은 극단적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몇몇 단순 유기체를 제외하고 어떠한 생명체도 남아있지 않은 죽음의 행성이 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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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기서 제시한 이론은 소위 말하는 페르미 역설(Fermi Paradox)에 그럴듯한 설명을 줄 수 있다. 기술적으로 진보한 문명이 등장한 무수히 많은 행성들이 있고, 지금쯤이면 우리로부터 멀지 않은 문명의 전파 신호를 찾아냈어야 했다는 것이다. 페르미 역설은 우리의 천문학자들이 외계의 지적생명체로부터 온 듯한 어떠한 전파 신호도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레이 커즈와일에 따르면, 페르미 역설에 대한 흔한 설명 중 하나는 “문명은 일단 전파 기술에 도달하면 스스로를 제거할 것이다”이다. 커즈와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명이 몇개 없다면 이 설명이 괜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명이 무수히 많다면, 모두가 스스로를 파괴했으리라고 믿기는 힘들다.” 문명의 자기 파괴가 우연에 의한 것이라면 커즈와일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진보한 문명들을 지속적으로 자기 파괴로 유도하는 공통된 과정이 있다면, 페르미 역설에 관한 위의 설명은 타당하지 못할 것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그러한 과정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오메 빡세게 번역하시네요. 좀 쉬엄쉬엄 하셔도 좋을텐데.. 마지막 페르미 역설에 대한 설명은 재미있네요 ㅎㅎ 전제 1과 2가 크리티컬한 지점이라 느껴지는데 이 지점이 조금 갸우뚱 하기는 하네요. 진화에 관련된 연구들을 교호해서 살펴봐야 할 듯해요. 적어도 카진스키가 매우 진지하게 임했다는 건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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