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번역)사회 발전은 결코 인간의 합리적인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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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익명 조회 457회 작성일 2021-04-07 20:38:2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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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velopment of a Society Can Never Be Subject to Rational Human Control

사회 발전은 결코 인간의 합리적인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

VI. 이 장에 대한 주된 비판은 아마도, 저자가 “누구나” 다 알고있는 뻔한 사실을 굳이 종이와 잉크를 낭비해가며 구구절절 설명했다는 비판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은 사회 발전을 결코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는 않다. 심지어 이 명제를 추상적 원칙으로는 인정하는 사람들조차 이 원칙을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하지 못한다. 얼핏 보기에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이,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정교한 계획은 절대, 절대, 절대 성공적으로 시행될 수 없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채 그러한 계획을 제안하는 것을 우리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목격하고 있다. 유명한 기술 비판자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수십 년에 전 읽기만 해도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은 환상적인 제안을 했다. 이반 일리치는 이렇게 적었다. “자율적인 개인들과 1차 집단들이,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설계된 새로운 생산 체제의 총제적 효율성에 기여할 수 있는 형태로 사회를 재구성해야한다.” 그리고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타인의 통제를 받지 않는 수단을 통해 최대한 자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사회를 설계해야한다."124라고 적었다. 마치 사회를 의식적으로,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거나 “설계”하는게 가능한 것 마냥 말이다. 지독하게 멍청한 또 다른 사례는 아르너 네스(Arne Naess)125와 첼리스 글랜디닝(Chellis Glendinning)126이 각각 1989년, 1990년에 저질렀다. 이 사례는 이 책의 제3장 파트 IV에서 다루고 있다.

지금 현재(2013년), 현명해야할 사람들이 자꾸만 사회 발전을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이로인해, 우리는 기술성애자들이 “인류는 스스로의 운명을 책임진다.”, “우리는 우리의 진화를 스스로 책임질 것이다.”, “사람들이 진화를 통제할 것이다.”127 같은 헛소리를 하는 모습을 자꾸 보게된다. 기술성애자들은 “연구를 지도해 기술이 사회를 개선”하는 것을 돕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은 “진보를 형성하고, 사회가 기술 발전의 결과에 적응하도록 돕고”, “인공지능을… 인간에게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해 “특이점 대학(Singularity University)”과 “특이점 연구소(Singularity Institute)”를 세웠다.128

물론, 기술성애자들은 기술의 “진보를 형성”하거나 “사회를 개선”하지 못할 것이며, 기술이 인간에게 우호적이게끔 만들지도 못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기술적 진보는 오직 상대방을 앞지르기 위해 기술을 도입하는 경쟁 집단들 간의 예측불가능하고 통제불가능한 권력 투쟁에 의해 “형성”될 것이다. 제2장을 참고하라.

아마 대부분의 기술성애자들은 “사회 개선”을 위해 기술의 “진보를 형성”하겠다는 헛소리를 진지하게 믿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는, “사회 개선”이라는 환상이 급진적인 기술 혁신에 대한 대중의 저항을 사전에 차단하는 프로파간다로 쓰이는 동안, 특이점 대학은 기술지향적 기업가들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고 있다.129 하지만 그러한 프로파간다는 오직 평범한 사람들이 그 환상을 진지하게 믿을만큼 순진하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사회를 개선”하겠다는 기술성애자들의 계획의 배후에 있는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이와 유사한 다른 진지한 계획들이 있다. 최근의 사례는,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2011)130과 빌 아이비(Bill Ivey)131의 저서를 참고하라. 리프킨과 아이비의 제안보다는 얼핏 더 정교해보이지만 똑같이 현실적으로 실행불가능한 계획들이 있다. 2011년에 출판된 책에서, 니콜라스 애쉬포드( Nicholas Ashford)와 랄프 P. 홀(Ralph P. Hall)132은 “산업국가들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기 위한 일관적, 학문통합적(transdisciplinary) 접근을 제시한다. … 저자들은 경제, 고용, 기술, 환경, 산업 발전, 국내법, 국제법, 무역, 금융, 노동자와 공공의 건강과 안전을 아우르는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목적 해결책의 설계를 주장한다.”133 애쉬포드와 홀은 그저 플라톤의 “국가”134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같은 관념적인 추측을 제시할 의도로 책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이 실용적인 계획을 제시했다고 믿고있다.135

또 다른 사례로(2011),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거대한, 정교한, 전세계적 “계획”136을 제안했다. 이 계획은 지구온난화를 통제하고137, 환경 문제들을 해결하고138, 동시에 우리에게 “참 민주주의”를 가져오고139, 기업들에게 “고삐”140를 채우고, 실업률을 낮추고141, 부유한 국가들의 소비를 줄이고142, 가난한 국가들의 경제를 성장시키고,143 “초-개인주의 대신 상호의존성을, 지배 대신  호혜(互惠)를, 계층 대신 협력을”144 조성하고, “지구의 생명체들을 보호하기 위한 이 모든 투쟁들을 일관적인 서사로 우아하게 엮어내고”145, 동시에 “진보”적 의제를 촉진146하여 “건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 목표이다.147

애쉬포드, 홀, 클라인148 같은 사람들이 떠올린 계획들이 일종의 정성들인 농담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아니다. 이들은 꽤 진지하다.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이러한 계획들이 현실 세계에서 실행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인간사에 대한 현실 감각이 아예 없는걸까?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나오미 클라인 스스로가 더 그럴듯한 설명을 내놓았다: “자신의 세계관이 박살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는, 현실을 부정하는게 언제나 더 쉽다...”149 대부분의 지식인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중상류층의 세계관은, 엄밀하게 조직되어있고, 문화적으로 “진보”한, 높은 수준의 사회 질서를 갖춘 대규모 사회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리가 따라가고 있는 재앙으로 향하는 길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조직 사회의 완전한 붕괴와 혼란으로의 추락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삶과 세계관이 종속되어 있는 사회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계획이라면, 그 계획이 아무리 비현실적이더라도 붙잡으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그들의 세계관을 그들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각주


124. Illich, pp. 10,20.

125. Naess, pp. 92–103.

126. Glendinning, as referenced in our List of Works Cited.

127. Grossman, p. 49, col. 1, col. 3. Vance, p. 1.

128. Grossman, p. 48, col. 3. Markoff, “Ay Robot!,” p. 4, col. 2, col. 3. (광고가 실린 부분은 무시할 것).

129. e.g., Vance, p. 1 참고(특이점 대학은 “기업가들에게 전망좋은 기술들을 소개시켜주는데 집중하고 있다…”, etc.).

130. Rifkin, as referenced in our List of Works Cited.

131. Ivey, as referenced in our List of Works Cited.

132. Ashford & Hall, as referenced in our List of Works Cited.

133. 출판사 서문은 2016년 3월 28일 http://yalebooks.com/book/9780300169720/technology-globalization-and-sustainable-development에 실렸다. 인용된 부분은 실제로 책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134.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를 그저 관념적인 추측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그가 최소한의 실용적 가능성을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Buchanan 참고: “The Republic," Book V, pp. 491–92; Book VI, pp. 530–31; Book VII, p.584. 하지만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근대에 들어서 플라톤의 “국가”는 실용적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 아닌 이론적 추측으로 다루어졌다.

135. Ashford & Hall, p. 1. (“우리가 이 책에서 논의한 처방을 유토피아로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136. Klein, pp. 14–15.

137. Ibid., pp. 14–17.

138. Ibid., p. 15.

139. Ibid., p. 15, col. 1.

140. Ibid.; 또한 p. 18, col. 1 참고. (“ 시장의 힘에 고삐를 채워야 한다.”)

141. Ibid., pp. 15, col. 1, col. 2; 16; 21, col. 2.

142. Ibid., pp. 16; 17, col. 2.

143. Ibid., p. 16.

144. Ibid., p. 19, col. 2.

145. Ibid., p. 20, col. 1.

146. Ibid.

147. Ibid., p. 20, col. 2.

148. 이런 망상들의 더 최근(2015) 사례들은,  Gardner, Prugh & Renner, p. 17 참고. (“지금 세계는 생산과 소비 체계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해결책을 도입해야한다… 이것은… 대규모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공학을 필요로 한다...”)

149. Klein, p. 18, col. 1. 뭐 기술의 진보가 인류 전부를 포옹할 여유가 있을 말큼으로 발전한다면 좋다만 꽤 높은 가능성으로는 상류층들만 온실속으로 대피하고 나머지들은 버림 받고 죽어갈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죠. 근데 그 미래는 저희 죽고나서 한참 일어날 일이라 아무도 신경 안쓰고 좀 깨어있는 분들만이 고려하는 생각으로 치부 되는게 현실.
결국 모 아니면 도 로써 특이점을 찾아내는데 과학자 분들의 노고가 인류의 향방을 결정 지어줄듯

결국은 또 집단, 계층 간 갈등인가요?

저는 사회가 저를 돌봐주는 대상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회는 진취적인 사람들이 달성해 놓은 결과물이지요.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반사회적입니다. 당연한 말인데요. 사회는 당연히 인간을 위해 존재한 적 없으며, 진취적인 집단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 사회입니다.

또한, 누가 누굴 돌봐주는 형태의 사회활동은 근본적으로 없습니다. 각자가 각자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작용하는거지요. 계약입니다.

공산주의도 그렇고 연이어 언급하시는 적극적 퇴보주의도 그렇고,... 더 보기
결국은 또 집단, 계층 간 갈등인가요?

저는 사회가 저를 돌봐주는 대상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회는 진취적인 사람들이 달성해 놓은 결과물이지요.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반사회적입니다. 당연한 말인데요. 사회는 당연히 인간을 위해 존재한 적 없으며, 진취적인 집단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 사회입니다.

또한, 누가 누굴 돌봐주는 형태의 사회활동은 근본적으로 없습니다. 각자가 각자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작용하는거지요. 계약입니다.

공산주의도 그렇고 연이어 언급하시는 적극적 퇴보주의도 그렇고, 사회로부터 뭔가를 받으려고 하면서 동시에 갈등이 어디서부터로 왔나로만 보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특히, 금융 경제를 부정하는 집단과 개인에게서 이런 사상이 자주 보입니다. 그냥 별 생각 없는 관점에서 마치 편하게 먹고 사는 것이 아니꼽기 때문이지요.

특히 글쓰신 분을 포함 카진스키도 개인이 아닌 사회를 수정하고자 하시는데, 개인을 수정하지 않고서는 사회는 당연히 수정할 수 없습니다. 개인이, 그 중에서도 사회에 기여하는 진취적인 개인이 계약에 따라 사회를 조정하는데 그 역이 될 수는 없지요.

개인의 진취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로부터 돌봄받거나, 사회를 어떻게해서 내가 무언가를 누리겠다는 생각은 그냥 체리픽커입니다.

발전한 기술은 우리가 흔히 누립니다. 과학 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모든 면에서요.
동네에는 부유하지 않은 사람도 공공정원(공원)을 누릴수있고, 먼 이국 땅의 음식도 마트에서 편하게 살 수 있죠.

기술 발전을 하면 당연히 진취적인 사람에게는 그것이 도움이 되죠. 기술 발전이 일어날때 러다이트를 떠올리는 사람은 그냥 게으른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를테면 지금 당장 사진 편집이나 영상 편집에 인공지능을 사용하면, 서너시간 걸릴 일이 수분만에 이뤄지거든요.

무언가 강요되는 사회는 문화의 문제입니다. 한국에선 홈스쿨링이 불법이지만, 미국에선 아닌 것 처럼요.

... 뭔가 꽃밭속에서 살고 계시는 것 같은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에요.

현대 사회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사회는 인간의 욕구에는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의 욕구만을 추구합니다. 사회가 인간의 욕망을 돌봐주는건 오직 인간의 욕망을 돌봐주는게 자신에게 이익이 될때만 한정됩니다. 많은 사람이 굶으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사회는 인간에게 음식을 공급합니다. 많은 사람이 우울해지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오락거리를 제공합니다.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인간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더 보기
... 뭔가 꽃밭속에서 살고 계시는 것 같은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에요.

현대 사회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사회는 인간의 욕구에는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의 욕구만을 추구합니다. 사회가 인간의 욕망을 돌봐주는건 오직 인간의 욕망을 돌봐주는게 자신에게 이익이 될때만 한정됩니다. 많은 사람이 굶으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사회는 인간에게 음식을 공급합니다. 많은 사람이 우울해지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오락거리를 제공합니다.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에 인간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사회가 폭력을 죄악시하는 이유는, 폭력이 사회를 위협하기 때문이지 딱히 인간을 아껴서가 아닙니다. 정작 사회는 자신에게 유리하다 싶으면 거리낌없이 폭력을 휘두릅니다. 인간의 욕구와 사회의 욕구가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언제나 사회의 욕구가 우선시된다. 예를들어, 사회는 과학자, 엔지니어를 필요로 하기에 어린이들에게는 수학, 과학 공부가 강요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숙련 노동자들이 해고당하는건 당연한 것으료 여겨집니다.

Curic님은 사회가 Curic님을 돌봐줄 것이라고 믿고 계시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사회는 Curic님 하나쯤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합니다.

특이점이 올지 안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두 가지는 확신할 수 있어요. 첫째는 그렇게 발전한 기술을 Curic님이 누릴 일은 없습니다. 둘째, 기술 발전과 비례해서 Curic님 형편은 시간이 갈수록 빠듯해질 겁니다.

이건 본인이 제일 뼈저리게 현실로 느끼고 있으시리라고 봐요.

채굴할 에너지가 없다는건 무슨 의미인가요? 고대 로마는 석유나 석탄 없어도 번영을 누렸습니다.

특이점에 대한 가설도 터무니없는 이론이 아닙니다. 이미 시중에 판매되는 애플 맥북만 봐도 5년전 수천만원 짜리 첨단 컴퓨터보다 뛰어난데요.

인공지능을 통한 이미지 인식 등은 이미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었습니다.

지금은 멀쩡한 문명입니다. 누가 밟는건 문명이 아니라 야만이라고 합니다. 지금 문명이 멀쩡하지 않다는건, 망상에서나 가능한 완전무결한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겠지요. 문제가 없는 문명이나 인류는 없습니다.

카진스키의... 더 보기
채굴할 에너지가 없다는건 무슨 의미인가요? 고대 로마는 석유나 석탄 없어도 번영을 누렸습니다.

특이점에 대한 가설도 터무니없는 이론이 아닙니다. 이미 시중에 판매되는 애플 맥북만 봐도 5년전 수천만원 짜리 첨단 컴퓨터보다 뛰어난데요.

인공지능을 통한 이미지 인식 등은 이미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었습니다.

지금은 멀쩡한 문명입니다. 누가 밟는건 문명이 아니라 야만이라고 합니다. 지금 문명이 멀쩡하지 않다는건, 망상에서나 가능한 완전무결한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겠지요. 문제가 없는 문명이나 인류는 없습니다.

카진스키의 문제는 인간의 사회적 특성을 무시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문명을 밟는 것에 동의할 사회집단은 없으며, 산업선진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도록 방치할 이유도 없습니다.

Curic 님// 알겠습니다.

현재 기술로도 당장 100억명, 200억명으로도 인구가 치솟아도 문제 없습니다.

지구 온도는 아무리 높아져도 높아지는 속도에 한계가 있고요.

음, 기술을 통해 지구를 벗어난 탈지구 종족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이야 말로 망상 아닐까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카진스키는 멀쩡한 문명을 폭력으로 무너뜨리자는게 아니라, 이미 무너진(혹은 무너져가는) 문명이 다시 회복할 수 없도록 짓밟아주자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 스스로가 자신의 저서에서 2050년경 전세계적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굳이 무시무시한 핵전쟁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산업 선진국에서 아사자가 대량으로 속출할텐데, 이런 상황에서 현대문명을 유지하는건 불가능하죠. 제안하신 "통제된"학살을 ... 더 보기
음, 기술을 통해 지구를 벗어난 탈지구 종족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이야 말로 망상 아닐까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카진스키는 멀쩡한 문명을 폭력으로 무너뜨리자는게 아니라, 이미 무너진(혹은 무너져가는) 문명이 다시 회복할 수 없도록 짓밟아주자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 스스로가 자신의 저서에서 2050년경 전세계적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굳이 무시무시한 핵전쟁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산업 선진국에서 아사자가 대량으로 속출할텐데, 이런 상황에서 현대문명을 유지하는건 불가능하죠. 제안하신 "통제된"학살을 통해 문명을 파괴하고 선택된 일부 집단만이 물리적 군사력을 보존하여 나머지 인류집단이 수렵채집 상태에 머물게 만드는 방법"은 너무 황당해서 뭐라 대답해드려야할지 모르겠네요.

일단 현대 문명이 한번 붕괴되면 다시 회복하는건 영원히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명이 존재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고, 에너지는 자원으로부터 얻어야 하는데, 이미 원시적으로 채굴할 법한 자원은 다 털려있는 상태거든요. 자원을 채굴하려면 최첨단 도구가 필요한데, 최첨단 도구를 작동시킬 자원이 없는 모순상태에 빠지는거죠. 어떤 경제학자는 기후 자체가 불안정해져서 농사가 불가능해 문명을 재건설하는게 불가능할거라고 예측하더라고요.

그리고 요즘 이상한 헛물 들이키고 특이점 왱알왱알 화성개척 역노화 왱알왱알 거리는 분들이 가끔 눈에 띄는 것 같은데, 전부 실현가능성 없는 망상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기술진보로 인류가 요람에서 벗어난 탈지구 종족이 되는것 이외에 대안이 뭐죠?

대규모 핵전쟁으로 인류를 리셋시키고 수렵채집사회로 귀환? 이래봐야 인류가 아예 멸망하지 않는한 사회간의 경쟁으로 물질문명의 재탄생은 필연입니다.

아니면 "통제된"학살을 통해 문명을 파괴하고 선택된 일부 집단만이 물리적 군사력을 보존하여 나머지 인류집단이 수렵채집 상태에 머물게 만드는 방법? 그런 방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악당 수준의 순진한 생각이겠죠?

다른 사람들이 카진스키의 발상과 그 이상을 폭력으로 이... 더 보기
그래서 기술진보로 인류가 요람에서 벗어난 탈지구 종족이 되는것 이외에 대안이 뭐죠?

대규모 핵전쟁으로 인류를 리셋시키고 수렵채집사회로 귀환? 이래봐야 인류가 아예 멸망하지 않는한 사회간의 경쟁으로 물질문명의 재탄생은 필연입니다.

아니면 "통제된"학살을 통해 문명을 파괴하고 선택된 일부 집단만이 물리적 군사력을 보존하여 나머지 인류집단이 수렵채집 상태에 머물게 만드는 방법? 그런 방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악당 수준의 순진한 생각이겠죠?

다른 사람들이 카진스키의 발상과 그 이상을 폭력으로 이루겠다는 행위에 대해 좋지않게 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런 방법은 불가능하며 필연적으로 나 자신과 가족, 친지의 죽음을 바탕으로 해야 이루어지는 짓거리이며 그렇게 왜곡된 체제를 만들어봐야 "충분히 오래(수십만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도 없는 망상이니까요.

기후변화는 인류의 행동이 결정적인게 아니라고 믿으시나요?

아, 그러니까 Curic님은 지구 온도가 40~50도 올라도, 수직농업이나 비닐하우스와 유사한 미래 신기술을 이용해 78억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식량공급을 할 수 있다고 믿고계시는군요?

기후변화는 인류의 행동이 결정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인류를 포함해서 지구 역사상 많은 대형 재해들은 인류의 행동과는 무관한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인류가 만든 수준의 재해는 인간이 관리가 가능합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대장균과 독감에 10대 20대에 일찍 죽어났겠지요.

20~30이 평균수명이던 시절을 70~80이 평균수명으로 끌어올린 것을 무능이라고 한다면, 대체 그 무능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에너지 소모량은 문명의 발전에 비례해서 증... 더 보기
기후변화는 인류의 행동이 결정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인류를 포함해서 지구 역사상 많은 대형 재해들은 인류의 행동과는 무관한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인류가 만든 수준의 재해는 인간이 관리가 가능합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대장균과 독감에 10대 20대에 일찍 죽어났겠지요.

20~30이 평균수명이던 시절을 70~80이 평균수명으로 끌어올린 것을 무능이라고 한다면, 대체 그 무능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에너지 소모량은 문명의 발전에 비례해서 증가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인간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성을 갖춘 생명체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에너지의 사용량을 높이는 것은 사회성을 갖춘 생명체로서는 본능의 하나입니다. 개나 고양이만 키워봐도 갖고놀던 장난감 안 주면 싫어합니다.

과학자들이 질소비료를 개발하지 않았다면, 산업혁명 이후에도 지금처럼 굶주림없이 인류가 번성할 수 없었습니다.
농업 기술은 헤아릴수없이 다양하게 발전했으며, 다른 여러 관련 기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산한 식품을 가공, 보관하는 기술역시 냉장고를 비롯해서 믿을 수 없을만큼 발전했고요.

빌게이츠는 이런 인류 전체의 생활 양식이 바뀔만한 미래 기술에 대해서는 언급하나요?

심지어 도심에도 농업을 가능케하는 수직농업을 비롯하여, 단지 온도가 높다고해서 혹은 온도가 낮다고해서 농업이 어려운 시대는 지났습니다. 비닐하우스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음... 의식있는 분들이 많은 것과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봅니다. "의식"있는 분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노력이 의미가 있었으면 애초에 기후변화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터질 일도 없었을 것이고, 생물멸종속도가 이렇게 빨라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과거에 무능했고, 지금도 무능한 사람이 미래에 갑자기 유능해지리라 믿기는 힘들고,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인 전세계의 에너지 소모량은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 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본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사회 발전은 결코 인간의 합리적인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극복하기는 불가능해보인다는 점에서, 상황이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심각해지면 심각해졌지, 좋아질 일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저는 빌 게이츠가 쓴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을 읽고 있는데, 지금 이 책에 써진 이야기랑 정 반대되는 말씀만 골라서 하고 계세요. 빌 게이츠는 제2장에서 Curic님처럼 기후변화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온도 40~50도 올라도 사람 사는데 문제 없다는 주장은 좀 우스꽝스럽네요. 그런 환경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요. 농사를 지을 수 없는데 지금처럼 많은 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어요? 지금 추세로라면 기후변화로 21세기 중반 즈음 남유럽의 밀, 옥수수 생산량은 절반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사하라사막... 더 보기
지금 저는 빌 게이츠가 쓴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을 읽고 있는데, 지금 이 책에 써진 이야기랑 정 반대되는 말씀만 골라서 하고 계세요. 빌 게이츠는 제2장에서 Curic님처럼 기후변화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온도 40~50도 올라도 사람 사는데 문제 없다는 주장은 좀 우스꽝스럽네요. 그런 환경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요. 농사를 지을 수 없는데 지금처럼 많은 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어요? 지금 추세로라면 기후변화로 21세기 중반 즈음 남유럽의 밀, 옥수수 생산량은 절반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사하라사막 이남에서는 농작물이 자랄 수 있는 시간이 20퍼센트 줄어들고 농지들이 심하게 건조해집니다. 중국의 농업이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먹이고 있는데, 중국의 농업 시스템을 위협해 대규모 식량 위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바다 수온이 섭씨 2도만 올라도 산호초가 완전히 사라져 바다 생태계가 파괴되어 해산물이 부족해집니다.지금 국가와 기업들은 자연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지 않습니다. 생물멸종속도는 수백년전보다 훨씬 빨라졌고, 과학자들은 이걸 6차대멸종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이 수많은 인류 구성원 중에서 의식있는 분들의 숫자도 충분히 많습니다.

적극적으로 환경과 관련한 단체 및 연구를 하는 분들, 기업과 제도 차원에서 다루는 분들도 많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인류 퇴보같은 실행 방법이 없는 방식을 추구하는 것보다 도움이 되죠.

이를테면 산업혁명으로 인해 런던에서는 공해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지만, 현재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기술이 해결했기 때문이죠.

과학 기술로 친환경 기술을 만들어 낸 예는 수도 없이 많지요.

기후 변화는 꼭 인간이 아니더라도 일어났을 뿐더러, 기후가 냉각되었을 때가 정말 치명적이지 기후가 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일어났던 적은 사실상 없습니다. 소빙기 같은 표현은 있어도 그에 반대되는 표현은 사실상 없죠.

평소에도 40~50도를 오르내리는 중동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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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산업혁명으로 인해 런던에서는 공해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지만, 현재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기술이 해결했기 때문이죠.

과학 기술로 친환경 기술을 만들어 낸 예는 수도 없이 많지요.

기후 변화는 꼭 인간이 아니더라도 일어났을 뿐더러, 기후가 냉각되었을 때가 정말 치명적이지 기후가 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일어났던 적은 사실상 없습니다. 소빙기 같은 표현은 있어도 그에 반대되는 표현은 사실상 없죠.

평소에도 40~50도를 오르내리는 중동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고요.

오히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에게 치명적인 오염, 바이러스 등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진시황같은 사례를 보더라도 무지로 인해 수은을 먹는다거나, 서양에서는 멀쩡한 이를 뽑고 병에 걸리면 피를 다량으로 뽑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많았죠.

온난화 외의 자연을 관리하는 차원도 과학으로 인해 체계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국가 규모로 산림을 관리하고, 법적으로 기업들과 개인에게 자연 보호를 교육하고 강제할 만큼 수백년 전 보다 진보되었습니다.

해당 글쓴이는 현대 사회를 이대로 내버려둘 경우, 체제 간의 경쟁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많은 사람이 죽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구가 일체의 고등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행성이 될거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아, 도시화가 사라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물어본게 아니라, 현대 사회가 계속 성장하면서 기후변화가 점점 더 심각해질텐데, 이로 인해 발생할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기후변화로 인한 전염병, 태풍, 가뭄과 같은 문제들의 직격탄은 빌게이츠가 아니라 길에서 과일, 야채 파는 분들이 맞지요.

다수가 원하는 것을 위해 개인의 생명까지 내놓아야 하는 공산주의와 그 아류들은 실패라는 하나의 선택지만 있죠.

가난한 사람도 고민이 있지만, 부유한 사람도 고민이 있죠.

생명체가 살아가는한 위험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도시화만 사라져도 맹수와 전염병에 떼죽음을 당하겠지요. 평균 수명은 30세 이하로 돌아가는건 당연한 수순이고요.

기후변화는 커녕 도시화가 사라지면 추운 겨울 제대로 된 난방도 없어 떼죽음 당하는게 눈에 선하네요.

그럴듯한 전염병이 아니라 단순 질병에 죽어나가는 일도 예삿일이 될테고요.

빌게이츠는 이미 인류 상위 0.01% 이상의 부와 명예를 이룬 사람인데 당연히 환경에 관심이 많겠죠.
길에서 과일 ... 더 보기
가난한 사람도 고민이 있지만, 부유한 사람도 고민이 있죠.

생명체가 살아가는한 위험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도시화만 사라져도 맹수와 전염병에 떼죽음을 당하겠지요. 평균 수명은 30세 이하로 돌아가는건 당연한 수순이고요.

기후변화는 커녕 도시화가 사라지면 추운 겨울 제대로 된 난방도 없어 떼죽음 당하는게 눈에 선하네요.

그럴듯한 전염병이 아니라 단순 질병에 죽어나가는 일도 예삿일이 될테고요.

빌게이츠는 이미 인류 상위 0.01% 이상의 부와 명예를 이룬 사람인데 당연히 환경에 관심이 많겠죠.
길에서 과일 야채파는 분들한테 빌게이츠가 우려한 것들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세요.

그렇다면 현대 사회가 이 상태로 계속해서 성장해나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기후변화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전염병은 더 큰 규모로, 더 자주 벌어지게될거에요. 이상기온으로 인해 태풍의 규모와 빈도도 높아질 것이고, 극심한 가뭄으로 농사가 불가능해 식량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올거에요. 이건 누군가의 막연한 망상이 아니라, 빌 게이츠도 자신의 저서에서 우려하는 상황이고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스스로 자아비판 하는건가요?

사회의 진보를 통제할 수 없다면 퇴보 역시 마찬가지로 통제해서 이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닐텐데...

그리고 사회의 유지를 목숨만큼 소중히 할 수 밖에 없는게

저자가 원하는 상태로 인류를 퇴보시키려면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규모의 파괴와 인명살상이 일어나야 가능한걸로 보이는데 말입니다.

사회는 다양성을 포용해야하니 적극적 퇴보주의자도 있어야 하긴 하겠죠.

기술성애자는 모순적인 점이, 사실상 모든 인간의 본성은 기술을 사용하는 것 아닌가요? 측량, 건축, 제련 등이 발견되지 않는 인간 집단이 지구상에 있던가요?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여긴 것들이 많이 실현되었죠. 인간형 로봇을 만들고, 달에 사람을 보내고, 수직이착륙기를 만들고, 밤에 전기로 불을 켜며, 마차보다 빠른 자동차를 쓰죠.

저도 첫 회사에서 팀 단톡방이 있었습니다.

이때는 1,3주 토요일 격주 출근이라 2,4주 토요일은 매우 꿀같은 존재였습죠 ㅎㅎ

근데 팀장(=상무) 라는 사람이 쉬는 토요일날 출근해서 도면하나를 그려야하는데 단톡방에 출근해서 그려줄 사람 없나? 하고 메시지를 뙇!

주임 나부랭이였던 저와 제또래 직원들은

어디어디에 나와있어서 못간다고 했고;;

문제는 사무실과 불과 1분거리에 있는 사내 기숙사에서 쉬고 있던 인원들 ㅋㅋㅋ

전화와도 씹고, 카톡도 팝업으로 내용 슬쩍 보고 씹다가 결국 한명이 총대메고 오후 3시 즈음되서 갔더니..

컴퓨터 켜놓은채 카톡방만 쳐다보고 대기타던 팀장을 발견합니다 ㅋㅋㅋㅋㅋ

메시지를 10시즈음에 보냈는데 점심시간 포함해서 5시간을 저상태로 대기타고 있었답니다 ㅋㅋㅋㅋ

결국 한명이 그 도면 그려주고, 일은 마무리 되었는데

월요일 아침 회의시간에 다 불러모아서는 주저리주저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  

그 결과는?  정확히 1년뒤 20후반 ~ 30초반 사원,주임,대리급 사람들이 다 퇴사하였읍니다 ㅎㅎ;     어찌됐던 그 팀장(성무) 참 무능하네요.
그정도 해결도 못하는게 먼 수로 성무가 되었다나요?
사장 동생인가... ㅡㅡ

안대여?

오픈톡 아니고서 안되지 않나요

저정도는 아닌곳이 더 많겠지만 기업체에서 더 높은 직급이라고 꼰대질 할 양반들이 수두룩한거 어릴때부터 직감했어서 사업을 하고 있다는게 참 다행....
직접 겪어보지 않았어도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네요.

사내 메일도 안쓸정도로 영세한 업체 주제에 꼴에 자기도 사장이라고 저런 갑질 하는거보면 참 말이 안나오는..

단톡방 파면 닉넴 바꿀수 있지 않나여?

네~ 저도 신입 친구들이 여기는 노답이다.. 하면 정말 미래가 없는 것이기에 계속 유지되면 언젠가는 와해가 될 것 같습니다.

쥬기시오!

카톡을 죽입시다 카톡은 나의 원수

중간관리자 입장에서는 띠겁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걸 인정 안하시는 분들은 도태되겠죠...
물론 주장하는 내용 자체도 진짜 사생활 부분이라 할말도 없구요...

바이럴 냄새가 나더라고요 ㅎㅎ

처음엔 하이웍스 바이럴인줄

중간직책 관리자는 기존 사원~대리급들이 다 퇴사하고 1년뒤에 모조리 퇴사하였읍니다 ㅎㅎ

아...
제가 저런 분위기에서 중간 직책에 해당해서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울렁합니다 ㅎㅎ

마음 같아서는 저도 신입 친구 편을 확 들어주고 싶지만.. 조금은 연착륙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ㅠ.ㅠ

회사용 메신저가 있어도 따로 카톡 파는 경우가 많죠

1. 높은 사람이 따로 쓰기 귀찮아 한다
2. 당연히 아랫사람이 안보면 장땡이니 퇴근 후나 주말에 못 본척한다


라는 이유로 단톡방 생기는 경우가 있죠

이미 초장부터 삔또가 상한 상태라, 해결책을 제시해봤자 불난집에 기름 붓는 격 ㅎㅎ;

저 사장은 답정너 입니다.

1) 내가 사장인데, 감히 니까짓게 대들어 ?? 건방진 뇨속 같으니라고!!!
2) 1에 대한것을 나에게 머리숙여 사과하고, 단톡방 인원들에게 사죄할것
3) 사장인 내 의견대로 프로필 이름을 바꿀 것.

이미 머릿속에 2,3번 패턴으로 가지 않는이상 직원이 무슨말을 하든 갈등만 심화될뿐

오픈톡방을 쓰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사내 메신저까지 따로 두고도 저런 요청을 하다니!

1) 퇴사 할 마음 먹고 제대로 대들은 경우
2) 하이웍스 바이럴
3) 다른 방법을 제시 해 봤자 못알아먹을 거 같으니 관둠 (내가 더 피곤해지니 법대로, 마이웨이로 감)

요정도가 아닐까여 ㅎㅎ

이름 설정 할 수 있을텐뎅 왜 그러지...

하이웍스 바이럴 일지도 모릅니다 ㅋㅋㅋ

밴드는 밴드마다 이름 다르게 설정할 수 있는데.....

제 친구가 3인실 기숙사 들어가서 사진 찍어보내줬는데 재입대하는 꿈이 취업한 현실과 적절히 콜라보되면 이런거구나 했습니다

핸드폰 사주고 요금까지 내주는거면 인정합니다

그런 이유로 젊은 사람들이 기숙사 있는 회사 퇴사율이 높다고 하더군요. 도저히 더러워서 못 견디겠다고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군대는 냅두면 부도덕해지고 멍청해질 수 밖에 없는 특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서... 시빌리언 컨트롤을 강화하고 왠만한 기능은 다 쪼개서 군 밖으로 빼놔야 됩니다.

정말 동의합니다.

군사법원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군 판사는 주심(메인딜러)의 역할을 맡는 것이 일반적이었고요.
재판장은... 군 판사와.. [재판관]으로 구성된 재판부의 장교 중에서 선임인 장교가 맡았습니다.

일선 부대에서의 군 판사는 대개 소령계급이었고... 관할관이 임명하는 재판관은 보통 사단이나 군단의 인사참모 같은 일반 장교였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단급 부대의 인사참모는 중령이니.. 자연스럽게(?) 법을 하나도 모르는 인사참모가 [재판장]으로 재판... 더 보기
군사법원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군 판사는 주심(메인딜러)의 역할을 맡는 것이 일반적이었고요.
재판장은... 군 판사와.. [재판관]으로 구성된 재판부의 장교 중에서 선임인 장교가 맡았습니다.

일선 부대에서의 군 판사는 대개 소령계급이었고... 관할관이 임명하는 재판관은 보통 사단이나 군단의 인사참모 같은 일반 장교였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단급 부대의 인사참모는 중령이니.. 자연스럽게(?) 법을 하나도 모르는 인사참모가 [재판장]으로 재판을 진행했지요.

후우....

앞서 리플로 달았던 것처럼, 군사법원법이 개정되어 향후에는 군 판사가 재판장을 맡게 됩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재판장이 판사가 아니었어요? 그럼 판사는 뭐해요....??
왓더...

평시 군사법원의 관할권은 크게 축소해야 한다고 봅니다. 군무이탈 내무부조라 같은 일반 형법으로 규제하기 함든 경우만 처리하는거죠. 나머지는 군사법원에서 처리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특히 고위 군인의 범죄는 더더욱....

4211이셨군요? 반갑습니다. ㅎㅎㅎ

사실, 군 판사는 주심으로, 재판장으로는 사단 인사참모 등이 앉아있는 것도 참 불합리한 일이었습니다마는...
그 부분은 마찬가지로 군사법원법이 개정되었더라고요. 올해 7.7. 부터는 재판장은 "군판사"가 되는 것으로요.

관할관 확인만큼이나... 재판장을 법은 하나도 모르는 인사참모 등의 장교로 앉히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다만, 관할관 확인이 여전히 살아있는 제도이고, 또 그만큼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재판장 문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금 써 둔 것까지만 해도 글이 충분히 길기도 하구요...

저는 2002~2004 사단 법무부 행정병이었습니다
오봉님 다른글을 보면 현역 법조인이신 것 같고
그래서 본문만 보더라도 검찰서기병이라던가 많은 부분에서 제 기억보다 디테일이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제가 군생활하던 시절에도 군 법조계는 형사사건의 민간전환(이라고 해야하나 용어가...)을 원했습니다
법공부를 그렇게 해도 실수할 수 있는데
법 1도 모르는 간부놈이 최종판결을 내려버리는 시스템이 정상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리가 없죠
하지만 군사법원독립을 군 권력이 해줄리가 없고 사회와 국민여론이 만들어내야 하는건데
군납... 더 보기
저는 2002~2004 사단 법무부 행정병이었습니다
오봉님 다른글을 보면 현역 법조인이신 것 같고
그래서 본문만 보더라도 검찰서기병이라던가 많은 부분에서 제 기억보다 디테일이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제가 군생활하던 시절에도 군 법조계는 형사사건의 민간전환(이라고 해야하나 용어가...)을 원했습니다
법공부를 그렇게 해도 실수할 수 있는데
법 1도 모르는 간부놈이 최종판결을 내려버리는 시스템이 정상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리가 없죠
하지만 군사법원독립을 군 권력이 해줄리가 없고 사회와 국민여론이 만들어내야 하는건데
군납비리도 못건드리는데 군사법원독립은 국민의 눈과 귀가 닿기에는 너무 멀었죠

군사법원독립은 모병제만큼이나 꼭 필요한 군 개혁입니다
아는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하고 지지할 내용입니다
다만 그것보다 가깝고 중한 일들도 잔뜩인게...

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자: 데이비드 스커비나(David Skrbina, 미시건 대학교 철학과 교수)
원문출처: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david-skrbina-a-revolutionary-for-our-times

우리는 기술에 둘러쌓여있다. 기술은 온 방향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뒤덮고, 그리고, 숨막히게 한다. 기술은 우리 일상의 모든 행동을 결정하고, 형성한다. 어떻게 살지, 먹을지, 잠잘지, 출근할지, 그리고 어떻게 일할지, 어떻게 여가를 보낼지, 어떻게 정부를 운영할지, 어떻게 전쟁할지. 기술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심지어 우리가 왜 해야하는지를 결정한다. 기술과 그 결과물은 우리의 공기, 우리의 물, 우리의 경치, 그리고 우리의 신체에 존재한다. 21세기의 선진국들에서, 기술의 영향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할 것도 없이, 언제나 이랬던건 아니다. 우리가 존재해왔던 대부분의 기간, 인류는 첨단 기술 없이 살아왔다. 2백만년 전 인류가 아프리카 사바나에 등장했을 때, 인간은 기초적인 도구만을 이용해 생존하고, 번영해왔다. 우리는 50명 가량의 집단을 이루어, 이따금 임시 야영지에 머물며, 떠돌이로 살았다. 2백만년 증 우리가 불을 사용한 기간은 절반에 불과하다. 뾰족한 돌이 달린 쓸만한 창이 등장한건 고작 10만년 전이다. 활, 바늘, 작살은 2만 5천년 전에 등장했다. 이는 인류가 존재해왔던 시간의 1%에 불과하다. 우리는 창과 손도끼, 단순한 가죽옷,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요리를 할 수 있는 모닥불만 갖고 자연의 위협과 도전을 견뎌왔다. 원시적인 삶을 이상화하지는 않겠다. 그 삶은 고달펐고, 끔찍했고, 이따금 폭력적이었고, 이따금 잔인했다. 하지만 그게 인간의 삶이었다.

좋던 싫던, 우리의 몸과 정신은 2백만년 간의 원시적이고, 낮은 기술수준에 맞춰 적응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고도로 발전한, 불가해한 기술에 둘러쌓여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곤경에 처한다.

자연의 일부로서, 99%의 시간을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며 살아왔던 우리가 어떻게 발전한 기술 세계에서 번영하고 잘 살수 있겠는가? 이성적으로 봤을때, 이는 불가능해 보이고, 실제로 불가능하다. 생리학적으로 석기시대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인간이, 급진적으로 변한 환경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할만한 근거는 없다.

한번, 2백만년의 인류의 삶을 50세 남자에 비유해보자. 인간이 농사를 짓고, 마을에서, 도시에서 살기 시작한지 1만년 밖에 되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문명의 역사는 인류의 삶의 0.5%밖에 되지 않는다. 50년을 기준으로, "현대적"인 삶은 고작 3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한번, 우리가 문명의 영향을 일체 받지 않는 사하라 이남 야생 아프리카 수렵채집인 50세 남자를 찾았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그에게 3개월간 현대 문명의 이기들을 점진적으로 알려주는 방식으로 그를 "돕고자" 한다. 일단 우리는 그를 작은 농장에 데려간다. 그리고 그에게 어떻게 농사를 짓고, 그가 야생에서 단 한번도 본적 없는 가축들을 어떻게 키우는지를 가르쳐준다. 우리는 그에게 씨뿌리기, 제초, 수확, 목축을 가르쳐준다. 그에게 한달의 적응시간을 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조그마한 시골 마을로 데려간다. 그에게 글쓰기와 기초적인 금속과 도자기에 대해 알려준다. 그는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매일 접촉하며 살아야한다. 그는 마을의 규칙을 따라야한다. 그에게 또 한달의 적응시간을 준다.

다음 달에 우리는 그에게 도시들을 보여준다. 작은 도시부터, 중간 도시로, 마지막에는 거대한 현대 대도시를. 마지막 30일동안 그에게 합성 목재, 금속 도구들, 총, 기계식 시계, 거대 건축물, 거대한 배, 철로, 사진기, 냉장고, 자전거, 가솔린 엔진, 전화기, 전등, 자동차, 라디오를 보여준다. 마지막 날에는, 그에게 제트 여객기, 텔레비전, 컴퓨터, 원자력 발전소와 핵무기, 집적회로, 우주 비행선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풀어준다. 그에게 몇 달러를 쥐어주고, 교외에 작은 집을 마련해주고, 넥타이와 양복을 입혀준다. 그리고 말한다. "행복하세요.", "모범 시민이 되셔야 합니다.", "그리고 나쁜짓은 하지 마세요. 걱정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그랬듯이, 당신도 잘 적응할 거에요!"

우리의 아프리카 친구에게 뭘 기대해야할까? 그의 미래가 밝을까? 집단으로서의 우리 인간은, 이 50세의 수렵채집인보다 나을 것이 없다. 물론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기술 세계에 태어나 성장했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와 정신은 과거에 갇혀있다. 우리는 이 과거를 세련된 옷과 정교한 언어로 숨기려한다. 그리고 우리는 각종 첨단 도구들로 무장한다. 하지만 고대의 수렵채집인은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있다. 이 세상을 이해해보려고 애쓰면서.

실증적으로, 증거들은 단 하나의 결과를 가리킨다: 즉, 인간은 첨단 기술들을 제대로 다룰 수 없으며, 첨단 기술은 우리의 신체, 정신, 환경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우선 우리의 신체적 건강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전통적으로 대단히 드물었던 현대적 질병에 시달린다: 비만, 암, 갑작스러운 죽음과 부상, (권총을 비롯한) 고성능 무기로 인한 고의적인 죽음과 전쟁, 에이즈 같은 전세계적 질병. 한해 4만명의 미국인들이 교통사고로 죽는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매일 3,300명이 교통사고로 죽는다. 44%가량의 미국인들이 약을 먹는다. 최근의 연구는 28%의 청소년들이 만성두통을 겪으며, 그중 40%는 매일 발생한다고 한다. 심지어 컴퓨터 사용 같은 일상적인 활동조차도 우리를 괴롭게 한다: 손목터널 증후군, 안구 피로, 허리통증, 관절통증, 두통, 키보드와 모니터의 화학물질, 그리고 정적인 생활로 인해 비롯되는 건강상의 문제들.

현대의 음식은 우리를 죽이고 있다: 살충제, 화학 비료, 성장호르몬, 급진적인 유전자 조작 식물들, 지나친 설탕, 지나친 지방, 지나친 고기. 원시 인류는 고기를 자주 먹지 않았다. 어쩌다 한번 고기를 먹을 때는, 방금전에 사냥한 야생의 고기였다. 그리고 창을 들고 오랜 시간 달린 후였다. 우리 현대인들은 일주일에 3.5파운드, 하루에 0.5파운드의 고기를 먹는다. 그 고기는 가축화된, 지방이 가득한, 항생제로 범벅된, 첨단 공장에서 자란 동물의 고기이다. 암을 비롯한 질병들이 놀랍지 않다.

또한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물리적 피해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테러리스트들-특히 정부에 있는 자들-은 첨단 기술을 이용해 목표를 달성한다. 생화학 무기,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사실상 모든 테러리즘 위협들은 첨단 산업 기술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9.11테러가 낮은 기술의 공격이었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비행기 납치범들은 가장 첨단의 현대 기술, 제트 여객기를 이용했다.

심리학적으로, 적어도 우리가 아는 바에 따르면, 고대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만성 우울증, 불면증, 자살, 양극성 장애, 치매, 불안증, 그리고 극단적인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수없이 많은 질병들. 15% 가량의 미국인들이 인격 장애를 갖고 있다. 그 중 26%는 정신질환으로 분류될 수 있다. 미국과 영국 모두 어린이에 대한 항정신성 약물 처방은 치솟고 있다. 영국은 지난 13년간 1만명당 3.9명에서 7.7명으로, 미국은 고작 5년동안 1만명 당 23명에서 45명으로 훨씬 빠르게 올랐다.

주의력 결핍 장애와 자폐증은 텔레비전과 비디오게임에 연관되어있으며,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2006년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8명 중 1명은 최소 한 개 이상의 인터넷 중독 증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 "끊기 힘들다"는 진술, 불필요한 사용, 도피 기제로의 사용, 인간관계의 악화-전부 전형적인 중독의 징후이다. 더 나아가, 연구자들은 수많은 심리적 질병들이 일상적인 컴퓨터 사용과 강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회 심리학자들은 현대의 무차별적이고 끔찍한 범죄들이 산업기술에 의해 악화된 사회적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라고 오랫동안 의심해왔다.

심지어 기술이 가져다줄 것으로 추정된 "장점"들 조차도 존재하지 않거나,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모든 가정에 정보의 홍수를 가져다온 인터넷은, 즉각적인 대규모의 소통을 가능케 한다. 이는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온다. 증거에 따르면 인터넷은 말 그대로 우리의 두뇌의 인지 회로를 바꿔놓는다. 이로 인해 중요한 글과 책을 읽을 때 필요한 집중력이 줄어든다. 저널리스트 니콜라스 카는 최근 "지난 수년간 난 마치 누군가가 내 뇌를 망가뜨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내가 옛날에 생각했던 방식으로 생각할 수가 없다. 2~3페이지만 읽어도 집중력을 잃는다. 난 단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며, 맥락을 놓친다..." 그는 인터넷의 검색 기능을 비난한다. 인터넷 검색은 효율성과 신속성에 최우선을 두며, 깊은 생각과 지속적인 집중력을 비롯한 다른 모든 것을 부차적으로 만든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통화할 수 있게 해주는 핸드폰 역시 불길한 징조를 보인다. 핸드폰은 DNA를 손상시킬 수도 있으며, 청소년의 불안증과 상관관계가 있으며, 임산부와 태아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며, 뇌종양과 악성 종양의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는 의심을 받는다. 다른 연구결과들은 이를 반박하지만, 핸드폰의 전파가 우리의 신체에 최소한 어떤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학교에서 쓰이는 기술 역시 뻔한 사례이다. 컴퓨터를 비롯한 첨단 교육 도구들은 수년간 학업 능력을 향상시켜줄 기적의 성물처럼 여겨져왔다. 이런 기술들을 어린이들과 신생아에게 사용하라는 광범위한 홍보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컴퓨터와 아이팟이 부정행위, 표절에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트위터와 같은 초고속의 짤막한 메신저는 학생들의 정서적, 도덕적 성장을 위협한다. 일반적인 문자메시지는 언어 능력을 해치고 있다. 신생아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교육 도구들, 예를들어 "아기 아인슈타인(Baby Einstein)"이나 관련된 비디오 학습 도구들은, 어린이를 돕지 못할 뿐더러, 실제로는 해를 끼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정부에 의한 2007년의 대규모 연구 결과는 기술 친화적 로비스트들에게 치명타를 날렸다. 16개의 교육 기술 상품들을 사용한 132개 학교의 9400명의 학생들을 조사한 결과, 학업 성적을 높이는데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학교들은 구제를 요청하고 있다. 뉴욕 타임즈 기사는 지역 학교 이사장을 인용한다: "지난 7년간, 학생들의 학업성취에 효과가 있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습니다. 전혀요." 비용과 학생 건강을 고려했을 때, 학교들이 기술 도입 계획을 심각하게 재고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영역에서 눈을 돌려, 자연을 바라보면, 우리는 재앙을 마주하게 된다: 전례 없는 멸종, 산림 파괴, 자원 고갈, 세계적 기후변화. 산업 사회의 오염 물질들이 북극의 물개들에게서 발견된다. 뉴욕에서 만들어진 산성비로 인해 코스타리카의 개구리들이 고통받는다. 지구온난화는 오랜기간 형성된 날씨 패턴을 바꾸고, 지구상의 모든 생태계를 위협한다. 방사능 폐기물들 수만년간 치명적인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인구 폭증은 발전된 농업기술, 의료기술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이 모든 문제들 중, 기후변화야 말로 아마도 가장 심각할 것이다. UN에 연계된 씽크탱크 프로젝트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급진적인 완화책 없이는, 기후변화가 "세계의 문명 대부분을 무너지게 할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궁극의 역설과 마주한다: 화석 연료로 작동하고 만들어진 기술 문명이, 지구 기후를 망가뜨리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천개의 종을 멸종시킬 것이며, 우리 스스로의 생존조차도 위협할 것이다. 우주적인 정의가 구현되는 듯 하다.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상황은 분명하다: 우리가 첨단 기술(도구들, 구조물, 사고방식, 힘, 권력)을 다룰 때, 이것은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해를 끼치고, 지구 환경을 심각하게 해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현대 기술은, 설령 그것이 자연으로부터 추출된 물질로 개발되었다 할지라도, 심각하게 비자연적인 현상이다. 인류 진화의 역사, 또는 지구 진화의 역사를 통틀어, 단 한번도 이런 현상의 결과물을 맞이할 준비가 된적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전세계에서, 매 순간마다 이 결과를 마주하고 있다.

현대 기술로 인해 인류가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근의 교과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기술의 문제는, 분석과 해석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분명하다... 기술은 우리 시대를 통제하는 힘이다. 이 힘은 이번 세기 인류 존재의 모든 측면을 형성하고,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나는 많은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의 문제"가 대단히 현실적이고,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미국인 69,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최근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51%가 "기술 회의주의자"에 해당한다. 기술 회의주의는 현대 기술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뜻한다. 이는 북미 기준으로만 1억명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우린 유럽인들이 기술에 더욱 회의적이라는 것을 경험상 알고있다. 따라서 유럽의 기술 회의주의자 숫자는 오히려 더 많을 것이다. 기술의 시대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깊은 정서가 널리 퍼져있는 듯 하다.

그럼 무얼 해야할까? 우리는 우리의 안녕을 해치는 수많은 위협들, 인류를 위협하는 그 모든 것들이 첨단 기술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어야할까? 그냥 주먹을 꼭 쥔채, 체제는 너무 거대하고, 단단하고, 무겁다며 한탄해야할까? 우리 지도자들에게 도와달라고 할까? 신에게 기도하면 될까?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우릴 구해주길 기다릴까? 기술 때문에 발생한 문제를, 기술이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다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이 책에서 우리는 이런 주제에 대해 논했다. 이는 복잡하고, 광범위하며, 집단으로서 우리의 미래에 극도로 중요한 것이다. 어려운 만큼이나, 피해서는 안되는 주제이다.

이 논의의 시작은, 물론, 시어도어 카진스키이다. 유나바머 범죄로 1996년 체포된 카진스키는, 앞으로 남은 평생을 콜로라도의 최고보안 교도소에서 지내야 한다. 유나바머 사건은 전세계의 주목을 이끌었다. FBI가 17년간 그를 잡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FC로 알려진 단체의 독특한 동기 때문이다. 결국 FBI가 받아들인 FC의 주요 요구는,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반기술 선언문을 주요 언론을 통해 출판하라는 것이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산업사회와 그 미래"를 1995년 9월 19일 출판했고, 그 날 대략 1백 20만부가 팔렸다. 얼마 후, 시어도어의 남동생, 데이비드 카진스키가 선언문의 문체를 알아보고, FBI와 접촉했다. 53세의 시어도어는 몬태나의 자그마한 오두막에서 1996년 4월 3일 체포되었다. 4월 15일 그의 모습이 타임지 표지에 실렸고, 오랜기간 추적을 피해온 남자를 전세계가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전기(biography)가 아니지만, 카진스키의 삶에 대한 몇가지 사실을 언급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는 1942년 5월 22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학업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2년을 월반했고, 16살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다. 1962년, 스무살에 카진스키는 수학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미시건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해, 5년 동안 수학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7년 그는 명문대 UC버클리에서 2년간 교수로 지냈다. 1971년 그는 몬태나 주 링컨 근처의 작은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지었다. 그는 가끔씩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으며, 근처 마을에 방문하곤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냈다.

상황이 달랐다면, 우린 카진스키를 평생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관광객들과 산림개발업자들이 지속적으로 그를 괴롭혔으며, 결국 평화로운 삶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는 일종의 침략전쟁이었으며, 카진스키는 스스로를 방어한 것이다.

몇년 후, 1978년 중반 즈음, 최초의 유나바머 공격이 발생했다. 1978년-1985년 사이에, 8개의 폭발물이 배송되었다. 그 중 하나는 비행기에서 폭발했으며 2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들이 대학(University), 공항(Airport)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착안해, FBI가 별명을 붙였다: "유나바머(Unabomber)"라고.

첫번째 사망자는 1985년 12월에 발생했다. 컴퓨터 가게 주인 휴 스크러튼이 그의 주차장에서 폭탄에 의해 사망했다. 1987년과 1995년 사이에 5건의 공격이 있었으며, 광고회사 이사 토마스 모서, 캘리포니아 산림연맹 회장 길버트 머레이 2명이 죽었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가 수감된 후 14년 동안, 사람들은 카진스키에 대해 많은 것을 듣고 읽었지만, 정작 카진스키 스스로가 한 말을 듣지는 못했다. 이 책은 처음으로 그의 글들을 모았다.

이 책은 카진스키를 둘러싼 가십거리에 대해 논하지 않을 것이다: 유나바머 사건의 진실, 카진스키의 개인사, 소위 말하는 "불행한 어린시절", "살인자의 심리", 혹은 미국 사법체계의 무능함. 이 책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기대할 법한 폭력, 폭탄제조, 살인, 그 외 끔찍한 행동들을 권장하지 않는다. 두루뭉술한 "기술에 대항한 혁명"의 측면에서의 폭력을 제외하면, 심지어 이 책은 폭력에 대해 말하지도 않는다.

이 책 전체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근미래에 등장할, 기술의 문제와 그에 대한 대응책에 집중한다.

독자들이 해야할 일은 유나바머 범죄와 현대 기술의 위협에 관한 합리적이고, 깊이있고, 성역없는 논쟁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설령 우리가 그의 범죄를 비난한다 할지라도, 우리에겐 카진스키한테 들을 말이 많다. 그를 무시한다고 해서 우리는 어떠한 이득도 얻을 수 없다. 이 책이 최고보안 교도소에서 출판됐다고 해서 그의 논증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카진스키의 글들은 현대 기술에 대한 비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 인간은 원시적이고, 낮은 기술 환경에서 진화해왔다. 이 상태가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 현재의 기술 사회는 우리의 자연상태와 급진적으로 다르며, 이로 인해 우리는 전례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자연에 해를 끼치고 있다.

* 기술로 인한 스트레스는 이미 심각하고,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다. 결국 인간은 체제의 필요에 맞는 방향으로 완벽하게 조작당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해치며, 혐오스럽고, 자연파괴적인 것이다.

* 기술 체제는 수정되거나, 개혁될 수 없으며, 비인간적인 미래를 피할길은 없다.

* 따라서, 체제는 끝장나야만 한다.

괜찮은 논리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든지 위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낮은 기술환경에서 진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신이 6000년 전에 인간을 창조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현대 기술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자연상태"일 수도 있다. 어쩌면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심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개혁이 가능할 수도 있다. 어쩌면, 혁명이 정당하다 할지라도, 불가능할 수도 있다. 카진스키의 주장으로부터 현대 사회를 변호하기 위해, 우리는 위와 같은 반론을 할수도 있다. 위에서 언급된 모든 쟁점들을 이 책에서 다룰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을 통해, 카진스키가 반박하기 쉽지 않은 주장을 하는 신중하고, 통찰력있는 사상가라는 점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나바머 재판이 한창일 때, 그의 주장을 접하기 굉장히 힘들었다. 대신에 우리는 끊임없는 가십거리에 노출되었다: 그의 인격과 행동에 대한 비난은 끊이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에 대해서는 손톱만큼도 다뤄지지 않았다. 이런 황당한 공격들은 주로 3개의 방법으로 "정당화"된다. 3개 전부 비논리적이다. 이런 전략들을 확실하게 매장하고, 의미있는 논의를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

첫째: "저 사람은 살인자다. 살인자의 사상을 논하는 것은 살인자를 명예롭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의 사법거래에 따라, 그가 정말 치명적인 우편폭탄을 보냈다는 점은 인정해야한다. 이로 인해 그는 정당하게 종신형을 선고받고 연방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그의 전략은 비난받을만 하다. 나 역시 그러한 행동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화된 사회라면 설령 흉악한 죄수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권리는 갖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대표적이다. 현대 국가의 모든 죄수들은 외부인과 교류하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책이나 작품을 출판할 권리가 있다. 유명한 "샘의 아들" 법에 따라 미국의 죄수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이윤을 얻을 수 없다. 카진스키는 이 책을 통해 단 한푼도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더 나아가, 카진스키가 받거나 보내는 모든 문서들은 미국 연방교도소 직원들에 의해 철저하게 검사받는다. 세계를 파괴하거나 사람을 죽일 비밀스러운 계획을 짜는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카진스키를 명예롭게 만들고 있는걸까? 존 레논을 죽인 마크 데이비드 챕맨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2005년 방송되었을 때, 비슷한 논쟁이 일어난 바 있다. "그 자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범죄자를 명예롭게 하는 것이다.", "그 자가 입도 벙긋하지 못하게 해야한다.""우린 절대 그 자가 한 말을 들어선 안된다." 등등. 많은 이들이 다큐멘터리에 반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되었고, 방송되었다. 그리고 그 다큐멘터리에는 관음증 외에 얻을 것이 전혀 없었다. 챕맨의 말에는 어떠한 깊은 의미도, 가치도 없었다. 그건 그냥 대중현상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알 권리가 있고, 그에게는 말할 권리가 있으므로, 다큐멘터리는 방송되었다. 그렇다면 카진스키, 그저 단순한 폭탄마가 아니라, 17년간 FBI를 따돌렸으며, 현대 가치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탈출구를 제안한 그가 하는 말은 훨씬 더 중요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의 눈과 귀를 틀어막고 그를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런다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 앞에는 여전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남아있다. 그의 글을 다루는 과정에서, 아마 우리가 그를 명예롭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 자연, 우리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바로 그들이 우리 행동의 결과물을 짊어지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래, 기술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 그런데 다른 선택이 있기는 한가? 뭘 해야하는데? 동굴로 돌아갈까?" 아마 이 주장의 핵심은 기술 사회는 바꿀 수 없는 현실이며, 이에 반하는 모든 논의는 시간낭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a) 당신에게 정말 선택권이 없다면, 대화는 끝났다. 카진스키가 승리했다. 당신에게 선택권이 없다면, 자유도 없다. 당신은 그냥 노예에 불과하다. 아마 톰 아저씨 같은 행복한 노예일 수는 있다.-하지만 그런 상태가 존엄하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b) 동굴이 기술 없는 삶을 뜻한다면, 당연히 우스꽝스럽고, 불가능한 이야기다. 지난 2백만년 간 우리는 생존을 위해 기술에 의지해왔다. 기술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점은, 어느 정도의 기술이 적절하냐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하고, 자연적이고, 통제가능하고, 생물분해가능한 기술을 쓸수도 있고, 복잡하고, 유독하고, 통제불가능한 기술을 쓸수도 있다.

동굴이 단순하고 낮은 기술의 삶을 의미한다면, 그래, 그게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우리 현대인들은 전기, 인터넷, 냉방, 수돗물 없이는 사는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인류 최대의 업적들은 컴퓨터, 전기, 수돗물 없이 이루어졌다. 생각해보자. 세상에, 컴퓨터 없는 삶이라니! 그 르네상스 시대 인간들은 야만인들이었군! 고대 그리스인들? 미개한 짐승들이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최소한의 도구만을 가지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 결국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잘 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좋은 삶에는 많은게 필요하지 않다.

세번째로 흔한 전략은 훈제 청어를 투척하는 것이다. 카진스키의 "정신나간" 아이디어를 제외한, 그에 관한 온갖 가십거리를 쏟아내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체제를 위협하고, 따라서 권력자들의 지위를 위협한다. 권력자들은 그의 주장이 공개석상에서 다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이를 피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사용한다. 카진스키의 주장은 강력하다. 특히 머리나쁜 정치인들, 질투심 가득한 지식인들, 대기업의 옹호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래서 그들은 손쉬운 방법을 찾는다. 그들은 카진스키의 정신건강, 어린시절, 법정공방-대중을 현혹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들먹인다. 이런 방식으로, 카진스키의 위험한 사상을 안전하게 묻어버릴 수 있다. 카진스키에 대해 보도한 모든 주류 언론들이 이에 동참했다. 언론들이 카진스키에 대해 광적으로 보도할 때 조차도, 그의 선언문에 대해서는 일말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카진스키의 체포 일주일 후의 타임지의 기사가 좋은 사례이다: 그의 주장에 대해서는 단 한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카진스키의 문체는 이 작업에 최적화되어있다. 그의 글은 명확하고, 정확하고, 또렷하다. 그는 전문용어를 쓰지 않으며, 일상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그가 특정 단어를 사용할 때는, 엄밀하게 정의한다. 그는 독자를 배려한다. 그는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쓴다. 그는 체계적이고 세심하다.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명료함과 정확함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카진스키의 독창성에 대해서는 논쟁할 여지가 없다. 카진스키의 주장 대부분을 다른 이들이 이미 다루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해서 그의 주장이 약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그의 주장은 강해진다. 그는 기술의 힘이 사회를 망가뜨릴까봐 걱정했던 주요 철학자들의 계보를 따르고 있다. 가장 오래된 사람은 노자일 것이다. 2500년전 존경받던 중국의 철학자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도구가 날카로워질 수록, 국가는 야만해진다."

날카로운 도구는 사회 구조를 잘라낸다. 사람들을 세상으로부터 소외시킨다. 이는 우리 모두를 암흑으로 이끌며, 우리는 한치 앞도 볼수 없다. 우리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만든 것이다.

얼마 후, 플라톤은 로고스와 기술에 대해 논했다. 그는 문자 같은 무해해보이는 기술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문자는 그것을 쓰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에 무관심하게 해서 그들의 영혼 속에 망각을 낳을 것이니, 그들은 글쓰기에 대한 믿음 탓에 바깥에서 오는 낯선 흔적에만 의존할 뿐, 안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힘을 빌려 상기하지 않게 될 것이오."(파이드로스, 275a)

이러한 고찰은 기술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긴 루소의 저서 학문예술론(1750)으로, 이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1850)으로 이어진다. 얼마 안가, 영국인 작가 사무엘 버틀러는 기술사회를 공격하는 전쟁을 일으켜야한다고 주장했다.

"매일매일, 기계들은 우리에게 기어오르고 있다. 매일매일, 우리는 그들에게 종속되어가고 있다. 언젠가 기계가 진정으로 세계와 그 거주자들을 지배할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당장 그들을 상대로 죽음을 각오한 전쟁을 일으켜야한다. 누구든 자신이 속한 종의 안녕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모든 종류의 모든 기계들을 모조리 파괴해야할 것이다."(기계 속의 다윈, 1863)

쉴러, 화이트헤드, 하이데거 같은 저명한 철학자들이 기술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출판했다.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에는 기계화와 "기계 사회"에 대한 통찰력 있는 공격이 담겨있다. 카진스키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친, 자크 엘룰의 1954년 걸작 기술 사회(The Technological Society)는 기술을 인간의 모든 측면과 자유를 침해하는, 일원적, 자율주행적 힘으로 묘사했다. 기술은 획기적인 만큼이나 파괴적이다. 1960년대, 70년대의 마르쿠제, 일리치 같은 급진적 사상가들이 체제에 대항한 혁명을 주장했다. 오늘날에도, 소위 말하는 녹색 아나키즘 운동이 이러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카진스키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루었던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훨씬 강렬하게 분석한다. 그의 독특함은 몇가지 방향으로 나타난다. 첫째, 그는 우리가 처한 곤경의 원인이 바로 기술 그 자체임을 끈질기게 지적한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심각한 문제들이,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현대 기술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둘째, 그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 자유에 최대의 가치를 부여한다. 바로 이것이 기술에 의해 심각하게 위협당하고 있는 가치들이다. 셋째, 그는 체제에 대항하는 혁명을 일으켜야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어떤 비평가들도 이런 적이 없다. 그리고 혁명은 그저 엉뚱한 희망사항이 아니라, 그의 비평의 핵심이다. 넷째, 그의 연구결과들은 신뢰할만하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은 신중하고 전문적인 방식으로 인용되어있다. 그는 허술한 발언을 하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지도 않고, 과장하지도 않는다. 마지막으로, 카진스키는 대단히 실용적이다. 그는 자신만을 위한 이론을 만들지 않는다. 현재 상황은 행동을 요구하며, 그는 기술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안한다.

유사 비평과 논점 흐리기 전략 없는, 진정한 고찰이 필요하다. 진지하게 기술의 문제점을 다루고 전진하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할 세 가지 이슈가 있다:

1. (인간이 겪는 스트레스와 존엄성, 환경파괴 등등에 비추어 보았을 때)현재 상황은 어떤가? 상황이 얼마나 안좋은가?

2. 수십년 정도의 근미래의 우리는 어떻게될까? 상황이 나아질까? 똑같을까? 나빠질까? 많이 나빠질까?

3. 우리가 이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가?

현대사회에 나름대로 적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상황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떤건 좋고, 어떤건 나쁘고, 어떤 문제는 심각하지만, 굳이 지금 당장 해결할 필요는 없다. 근미래에도 그들은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어떤건 나아졌고, 새로운 문제가 몇개 생겼고, 전반적으로는 괜찮아진 것 같다. 이는 자동으로 보수적인 관점으로 이어진다: 현상을 유지하자. 호들갑떨지 말자. 협력하자. 열심히 일하자. 규칙을 지키자. 투표하자. 애국심을 갖자. 심각한 재앙은 없다. 설령 재앙이 찾아온다 해도 우리에겐 이를 해결해줄 정부, 과학자, 기업들이 있다. 이런 관점은, 카진스키에 따르면, 순진할 뿐만 아니라, 위험할 정도로 낙관적인 것이다. 이 관점은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는 기술, 그리고 지구 전체를 통제할 권력의 등장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기술의 위협에 대해,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식의 태도도 흔하다: "그래, 기술에 따르는 불가피한 문제들이 있지. 하지만 이건 학습을 하는데에 필요한 과정이야. 실수를 통한 고통이 없다면, 기술의 장점을 누릴 수 없어." 만약 (a) 고통이 예측 가능하고, 제한적이고, 통제가능하고, (b) 그 고통이 공평하게 분배되고, (c) "장점"이 실제로 장점이기는 한지 확신할 수 있다면 이런 입장도 괜찮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카진스키는 위 세가지 가정이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건 "조금 거짓"이 아니라, 아주 심오하고 급진적으로 거짓이다.

이러한 핵심적인 질문에 대한 카진스키의 답변은 명확하다. 그와 편지를 교환할 때, 난 그의 논리를 더 자세하게 이해하기 위해 이 지점들을 압박했고, 이러한 입장들의 문제점을 파악하였다. 사실, 이 질문들은 우리 스스로에게 해보아야할 중요한 문제들이다. 게다가, 이 논의는 끝나지 않는다. 이 논의는 기술 자체가 발전함에 따라 계속 진행된다. 현재 옳았다고 여겨졌던 답변이 미래에 틀린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100년전, 헨리 포드는 자동차로 인한 고속도로 사고, 스프롤 현상, 석유로 인한 전쟁, 지구온난화를 예측할 수 없었다. 텔레비전을 만든 발명가들은 이로 인한 비만, 질병, 학업능력 저하, 주의력 결핍 장애를 예측할 수 없었다. 프레온 가스(CFC)를 만든 발명가들은 그것 때문에 지구 오존층에 구멍이 뚫릴 것을 예측할 수 없었다. 탄광업체들은 그들의 상품으로 인해 지구 전체의 기후가 변할 것을 알 수 없었다.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이건 기술 발전의 피할 수 없는 측면이다. 우리는 결코 기술이 가져올 결과를 알 수 없다. 그리고 기술이 더 강력해질 수록, 위험도 커진다. 만약 지구온난화가 우리가 알고있는 지구의 생명체 유지 능력을 파괴한다면, 산업시대의 경이로운 업적들은 전부 쓸모없는 것이 될 것이다.

노자의 말을 살짝 바꿔보자: 도구가 날카로울수록, 시대는 어두워진다. 우리는 정말 날카로운 도구의 시대에 살고있다. 따라서, 이 시대는 정말 어두운 시대이다. 하지만 도구에는 양면성이 있다. 어쩌면, 도구로 도구를 파괴할 수 있지 않을까? 혹시 기술 체제는 스스로를 파괴할 씨앗을 품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게 우리의 유일한 희망일 수도 있다.

우리는 기술의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하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 최근 몇년간 우리는 재앙이 어떤식으로 시작할지 볼 수 있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급진적인 해결책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건 오직 얼마나 끔찍한 결과가 있을지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재앙이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지금 당장,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고, 지구를 지키고, 우리가 생존할 가능성을 높이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이 질문이야 말로 가장 긴급하게 우리에게 물어보야할 질문이다. 이것을 무시하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이 글에 등장한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삼일만에 굶어죽을 나약한 근대인이 아니라, 몬태나 숲속 오두막에서 전기없이, 수돗물 없이 20년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배부르고 등따수우니 좋은거 아니냐는 논리는, 동물원의 원숭이들이 인간의 보호 하에 등따숩고 배부르게, 아프면 치료받고 사니 좋지 않겠느냐랑 똑같은 논리죠.

근대 이백년이 이룩한 성취가 얼마나 엄청난데 역사를 왜곡하는 자로군요!
청결한 식수, 풍부한 영양소 섭취, 백신과 현대 의학, 타살 당할 확률 낮음.
산업혁명 이전 지구 아무데나 던져놔도 삼일만에 굶어죽을 나약한 근대인이 징징거리는걸로 보여요.
"기술! 문명! 너무 복잡해! 소박한 그 옛날이 아름다웠는데"

2.69%. 명백한 가능성.

개가 짖어도 마차는 달린다

혁명전사가 되시오. 자랑스런 혁명전사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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