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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의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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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익명 조회 433회 작성일 2021-07-18 13:05:0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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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ore John Kaczynski, Technological Slavery, Fitch & Madison, 2019. p267-281에서 발췌.

목차


1. 과학자들의 동기

2001년 7월 24일, 나는 P. B. 박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는 “<산업사회와 그 미래>에 대한 응답”이라는 제목이 붙은 글이 동봉되어 있었다. 그 글에서 B 박사는 ‘산업사회와 그 미래’에 대한 여러 개의 비판을 제시했다. 무엇보다도, B 박사는 과학자들에게 있어 인류의 이익은 주된 동기가 아니라는 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산업사회와 그 미래, 문단 88~89) 다른 작업들을 하느라 바빠서, 2009년 5월까지 B 박사의 반론에 답장1할 시간이 없었다. 아래는 B 박사에게 보낸 답장을 다시 쓴 글이다.

I. B 박사는 과학자들의 동기에 대한 나의 논증이 “유별나게 약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왜 에드워드 텔러 박사가 나쁜 사람인지에 대한 논증. 다 좋다 이겁니다. 하지만 물리학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 대부분은 텔러보다는 아인슈타인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인류의 이익은 과학자들의 주된 동기가 아니라는 ISAIF(산업사회와 그 미래, 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인물이며, 그런 사례가 아인슈타인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더 나아가, B 박사는 내가 “과학자들의 도덕적 기능(moral agency)을 본질적으로 부정했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보기에 명백히 부정적인 연구 분야(예를들어,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의 무기 설계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에게 직접 물어본 결과, 그들은 설령 자신의 연구가 위험하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그들은 조국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고 있으며, 조국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므로써 세계를 위해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 했습니다. 이들은 윤리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으며, 도덕적 행위자로서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B 박사는 “무기를 설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지지하는” 과학자들도 있었으며, 그들의 연구가 “윤리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느정도 양보했다.

우선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자. ISAIF의 문단 87~89에서 내가 과학자들의 “평범하고” “일반적”인 동기에 대해  논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몇몇 예외 사례들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따라서, 설령 1%, 아니면 5%의 과학자들이 실제로 인류의 이익을 위해 연구한다 하더라도 내 주장이 심각하게 반박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과학자들의 동기에 대해 논할 때 다른 사안에 대한 동기가 아니라 “과학적 연구”에 대한 동기에 대해 논했다는 것 역시 명백하다. 나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도덕적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과학자들이 도덕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주장과 과학자들이 주로 도덕적 동기에 의해 연구한다는 주장은 서로 다른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과학자들의 도덕적 무관심 사례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그 사례들 중 몇가지를 살펴볼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의 주된 동기가 인류의 이익이 아니라는 주장은, 실험실 밖에서의 과학자들의 도덕적 기능을 부정하지 않는다. B 박사는 아인슈타인을 언급했다. 아인슈타인은 세계 평화를 위해 일했다. (아니면 적어도 세계평화에 대해 설교하기는 했다.) 물론 이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동기는 대단히 도덕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물리학 연구 동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추정컨데 B 박사의 반론은 과학자들이 과학적 연구에 대해 도덕적 기능을 사용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2002년에 나는 B 박사의 이론을 이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두 명의 심리학자들에게 적용해보기로 했다. 내가 보기엔 유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냉철한 합리주의자”로 여겼으며, 프로이트주의 같은 의심스러운 이론에 회의적이었다. 아래는 나의 2002년 4월 9일자 일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P. B. 박사의 반론에 답장을 쓸 계획이다. 오늘 워터슨 박사(Dr. Watterson)와 모리슨 박사(Dr. Morrison)가 방문했을 때, 나는 그들에게… 그들이 심리학을 하게 된 동기가 개인적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인류를 돕기 위한 것이었는지 질문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심리학을 연구하는 동기가… 인류를 돕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지 질문했다. 워터슨 박사와 모리슨 박사 둘 다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인류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개인적 욕구(“특히 자아ego 욕구요” 워터슨 박사가 말했다)를 충족시키기 위해 심리학을 연구한다고 대답했다. 모리슨은 많은 심리학자들이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심리학자가 됐다고 말할테지만, 그것은 그들의 진정한 동기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나는 워터슨과 모리슨에게 과학자들이 도덕적 행위자(moral agent)라는 B 박사의 주장에 대해 들려주었다. 워터슨과 모리슨은 즐거운 듯 보였다. 모리슨은 혀로 볼을 찌르더니, B 박사에게 한 줄 짜리 답장을 보내라고 제안했다. “생활을 해보세요!(Get a life!)”]


각주


1. 내가 답장을 쓸 무렵에는, P.B. 박사는 더 이상 2001년의 주소에서 지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대단히 흔했기 때문에, 그의 위치를 정확히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엔 나의 협력자 한 명이 P. B. 박사의 정확한 것 "같은" 주소를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 주소로 답장을 보냈으나 어떠한 답변도 받지 못했다. 아마도 잘못된 주소였을 것이다.

여신강림 작가 근황



딥빡 하셨음ㅋㅋㅋㅋㅋㅋ 고소준비중

Theodore John Kaczynski, Technological Slavery, Fitch & Madison, 2019. p267-281에서 발췌.

목차


1. 과학자들의 동기

2001년 7월 24일, 나는 P. B. 박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는 “<산업사회와 그 미래>에 대한 응답”이라는 제목이 붙은 글이 동봉되어 있었다. 그 글에서 B 박사는 ‘산업사회와 그 미래’에 대한 여러 개의 비판을 제시했다. 무엇보다도, B 박사는 과학자들에게 있어 인류의 이익은 주된 동기가 아니라는 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산업사회와 그 미래, 문단 88~89) 다른 작업들을 하느라 바빠서, 2009년 5월까지 B 박사의 반론에 답장1할 시간이 없었다. 아래는 B 박사에게 보낸 답장을 다시 쓴 글이다.

I. B 박사는 과학자들의 동기에 대한 나의 논증이 “유별나게 약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왜 에드워드 텔러 박사가 나쁜 사람인지에 대한 논증. 다 좋다 이겁니다. 하지만 물리학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 대부분은 텔러보다는 아인슈타인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인류의 이익은 과학자들의 주된 동기가 아니라는 ISAIF(산업사회와 그 미래, 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인물이며, 그런 사례가 아인슈타인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더 나아가, B 박사는 내가 “과학자들의 도덕적 기능(moral agency)을 본질적으로 부정했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보기에 명백히 부정적인 연구 분야(예를들어,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의 무기 설계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에게 직접 물어본 결과, 그들은 설령 자신의 연구가 위험하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그들은 조국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고 있으며, 조국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므로써 세계를 위해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 했습니다. 이들은 윤리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으며, 도덕적 행위자로서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B 박사는 “무기를 설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지지하는” 과학자들도 있었으며, 그들의 연구가 “윤리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느정도 양보했다.

우선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자. ISAIF의 문단 87~89에서 내가 과학자들의 “평범하고” “일반적”인 동기에 대해  논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몇몇 예외 사례들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따라서, 설령 1%, 아니면 5%의 과학자들이 실제로 인류의 이익을 위해 연구한다 하더라도 내 주장이 심각하게 반박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과학자들의 동기에 대해 논할 때 다른 사안에 대한 동기가 아니라 “과학적 연구”에 대한 동기에 대해 논했다는 것 역시 명백하다. 나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도덕적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과학자들이 도덕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주장과 과학자들이 주로 도덕적 동기에 의해 연구한다는 주장은 서로 다른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과학자들의 도덕적 무관심 사례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그 사례들 중 몇가지를 살펴볼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의 주된 동기가 인류의 이익이 아니라는 주장은, 실험실 밖에서의 과학자들의 도덕적 기능을 부정하지 않는다. B 박사는 아인슈타인을 언급했다. 아인슈타인은 세계 평화를 위해 일했다. (아니면 적어도 세계평화에 대해 설교하기는 했다.) 물론 이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동기는 대단히 도덕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물리학 연구 동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추정컨데 B 박사의 반론은 과학자들이 과학적 연구에 대해 도덕적 기능을 사용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2002년에 나는 B 박사의 이론을 이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두 명의 심리학자들에게 적용해보기로 했다. 내가 보기엔 유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냉철한 합리주의자”로 여겼으며, 프로이트주의 같은 의심스러운 이론에 회의적이었다. 아래는 나의 2002년 4월 9일자 일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P. B. 박사의 반론에 답장을 쓸 계획이다. 오늘 워터슨 박사(Dr. Watterson)와 모리슨 박사(Dr. Morrison)가 방문했을 때, 나는 그들에게… 그들이 심리학을 하게 된 동기가 개인적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인류를 돕기 위한 것이었는지 질문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심리학을 연구하는 동기가… 인류를 돕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지 질문했다. 워터슨 박사와 모리슨 박사 둘 다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인류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개인적 욕구(“특히 자아ego 욕구요” 워터슨 박사가 말했다)를 충족시키기 위해 심리학을 연구한다고 대답했다. 모리슨은 많은 심리학자들이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심리학자가 됐다고 말할테지만, 그것은 그들의 진정한 동기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나는 워터슨과 모리슨에게 과학자들이 도덕적 행위자(moral agent)라는 B 박사의 주장에 대해 들려주었다. 워터슨과 모리슨은 즐거운 듯 보였다. 모리슨은 혀로 볼을 찌르더니, B 박사에게 한 줄 짜리 답장을 보내라고 제안했다. “생활을 해보세요!(Get a life!)”]


각주


1. 내가 답장을 쓸 무렵에는, P.B. 박사는 더 이상 2001년의 주소에서 지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대단히 흔했기 때문에, 그의 위치를 정확히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엔 나의 협력자 한 명이 P. B. 박사의 정확한 것 "같은" 주소를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 주소로 답장을 보냈으나 어떠한 답변도 받지 못했다. 아마도 잘못된 주소였을 것이다.

이준의 라이벌?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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