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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놈들 변명중에 젤 조까튼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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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범다설 조회 24회 작성일 2021-07-21 23:54: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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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빵치고 개발렸는데 그걸 원한을 잊었다고 생각함

쳐맞고 뇌가 리셋되서 요즘 또 깝친다는게 학계의 정설

피지알의 동성애글타래에서 관심을 유발하는 댓글을 보고 생각이 나서요.
http://www.uua.org/lgbtq/welcoming/ways/bathrooms

Gender Neutral restroom이란 건 이런 거예요.

성중립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에는,
1. 신체는 남성이나 성정체성이 여성인 사람.
2. 신체는 여성이나 성정체성이 남성인 사람.
3. 아이와 함께 있는 부모나 보호자의 성이 다른 경우, 예를 들어 다섯살짜리 남자아이를 화장실에 데려가야 하는 엄마는 여자화장실 쓰기도 민폐고 남자화장실을 사용할 수도 없겠죠.
4. 환자나 장애인과 함께 있는 보호자가 동행한 이와 성이 다른 경우.

즉 이말은,

남자화장실 이용자 : 신체와 성정체성이 똑같이 남성인 사람.
여자화장실 이용자 : 신체와 성정체성이 똑같이 여성인 사람.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이 제도권 내에 포용이 되었을 때 남자를 사랑하는 여성이 남성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당신도 남성을 사랑하니 남자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오라고 할 수 없어요. 게이는 신체와 성정체성이 똑같이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어요. 레즈비언은 신체와 성정체성이 똑같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자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남자화장실이 꽉 찼거나 여자화장실이 꽉 찼는데 성중립화장실이 비었다면 아무나 좀 사용해도 될 거예요. 타인과 나 사이의 성적수치심하고 남녀화장실 구분은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신기한 건 눈 둘 곳이 없어 민망했던 것과 별개로, 정말로 단 한 번도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원체 줏대없이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타입이라 그런지 몰라도요 흐흐.

그런데 이것도 생각해보면 관념차이인가 싶어요. 가령 발기를 한다는 경우에 대해 "나 너랑 붕가붕가붕가" 이런 코드로읽히는것보다 저런 곳에서 발기할경우 그냥 생리적 현상으로 심드렁하게 생각하는 관념이 일반적이라면 별 문제 안될거같기도 해요.

좀 불안한게
아무리 노력하려 해도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보고 "서면" 어떻하나요 ㅡㅡ;;;
빨리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흐흐흐

저도 홀랑 벗고 자전거 타는 사진 보고 그 자연스러운 풍경이 좋아보였을 뿐 저로서도 도저히....킄
전 미국에 좀 살았는데도 아직도 동양인들의 self-concious한 성향을 참 못버리겠더라고요.

유럽에서 생활할 때 집근처나 사무실근처나 아무리 찾아봐도 헬스장 사우나 말고는 사우나가 없는데
사우나 매니아인 저로서는 초반에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남녀노소 그냥 다 들어와요. 알몸으로.
거기서 가리거나 부끄러워하면 되려 이상한 사람이 되구요.
자연스럽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들어오시면서 "좋은 아침!/안녕하세요!" 하면 다들 같이 인사하고...
애초에 "타인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는 이상 사우나에서 벗고 다닌다고 그게 뭐가 문제냐" 라는 부분이 처음엔 참 힘들었습니다.

그 결과 당시에 정말 운동을 열심히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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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생활할 때 집근처나 사무실근처나 아무리 찾아봐도 헬스장 사우나 말고는 사우나가 없는데
사우나 매니아인 저로서는 초반에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남녀노소 그냥 다 들어와요. 알몸으로.
거기서 가리거나 부끄러워하면 되려 이상한 사람이 되구요.
자연스럽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들어오시면서 "좋은 아침!/안녕하세요!" 하면 다들 같이 인사하고...
애초에 "타인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는 이상 사우나에서 벗고 다닌다고 그게 뭐가 문제냐" 라는 부분이 처음엔 참 힘들었습니다.

그 결과 당시에 정말 운동을 열심히 했었습니다.
지칠 정도로 헬스를 하고 사우나에 가면 힘들어서 그런 거 신경 쓸 여유가 없어지더라구요. 흐흐.

ㅎㅎ...
저는 엄마랑도 벗은채로 있는 거 싫은..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게 뭔지잘모르겠지만 도심한가운데서 웃짱까고다니는사람이나 빨개벗고 자전거타는사람보면 남자던 여자던 상당히 거부감들겠네요 별개의 경우지만 대중탕에서 서로 벗은채로 동성애자와 마주치는것도 불쾌하고요.
그에비해 남녀공용화장실이건 동성애자가 함께쓰는화장실이건 이건 별상관 없네요.

제가 생각을 해봤어요. free nipple운동이란 게 저는 그러고 다니고 싶지는 않지만 이해는 되거든요. 남자의 니쁠과 여자의 니쁠은 생긴 게 그게 그거잖아요. 언덕이 있나 없나의 차이일 뿐인데 여성들이 가슴을 드러내놓고 다니지 못하는 이유는 원래 가려져야 할 가치라서가 아니고 "성적대상화" 되기 때문이에요. naked bike ride라고 검색하면 백주대낮에 남자 여자 몽땅 홀라당 벗고 자전거를 타거든요. 아마 free nipple운동이나 naked bike ride를 보며 불쾌해하는 여성분들이 더러 계실 거예요. 그런데 사실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않기만 하면 다 괜찮은 일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대중탕이용도 성적대상화를 자제하면 더 좋을 일인 것 같아요.

대중탕은 생각을 안 해 봤어요. 이건 어찌해야할까 라고 생각하기엔 지금 배도 고프고 회사 가야하고, =3

변기뚜껑 어찌 해놓고들 사는지 궁금...킄

화장실은 괜찮은데 대중탕은 좀 나눠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엘리 맥빌이란 드라마를90년대 에 봤을 때
신기했던 점이 남녀 모두가 화장실을 같이 쓰는 거 였죠

오.. 도사님.. 다른 나라들은 모르겠고 미국에서 많이 쓰는 말 중 하나가 consequence인 것 같아요. 말씀 정말 잘 해주신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미국만큼이나 벌의 강도가 세고 법집행이 확실하면 선진국 뺨치게 사기나 범죄가 확 줄고 선진국민 소리들을 거예요. 민족성의 문제가 아니고 순전히 제도의 문제..

그게 많은 보통사람들의 사고일텐데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쓰는 표현들 "남자는 늑대" 이런 사소한 표현들로 인해 아마 손해보는 남성들 많으실 듯..흐흐..

사고가 안생기지는 않겠지요. 남자끼리 있어도 사고는 생깁니다.

하지만 사고가 생겨도 그건 남녀간의 차이 때문이 아닌 사람의 문제라는 것과 반드시 잘못횐 것은 댓가를 치른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녀 또는 남남, 여여끼리의 합의에 의한 성행위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도 있겠지요.

"상대방이 싫다면 내가 뎀빌 것도 아닌데 사고가 왜 생기냐"
오, 이거 공감합니다. 제가 여자사람친구가 몇 명 있는데 가끔 둘이나 셋이서 모텔방 잡거나 자취집 앉아서 밤새 술 마시고 한 이불 덮고 자고 그러지만 아무 사고도 없거든요. 제가 겉으로는 산적 같아도 사고방식이 저런 식인 걸 다들 알고 있다보니 여자사람친구들이나 제 여자친구나 아무도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가끔 고자 / 게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던데, 실은 사고방식 문제죠. 저는 여자사람친구들의 여성성을 존중하지만 성적 대상으로 여기진 않거든요.

이게 바로 사고방식의 차이인데요. 우리는 이성애자 남녀가 한 방에 있으면 사고날 거라고 먼저 생각하잖아요. 서양은 확실히 그런 생각이 잘 없는 것 같아요. 상대방이 싫다면 내가 뎀빌 것도 아닌데 사고가 왜 생기냐라고 아주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 근데 미국은 군대에서 성문제 심각해요.

그거 희한하네요. 사고가 안생기는걸까요.

하기야 ㅋ.
여성도 병역을 치르는 노르웨이에선 남군이랑 여군이랑 방 같이 쓰더라고요. 서로 있는 데서 옷도 그냥 막 갈아입어요.

사실 많은 허름한 술집 화장실은 이미 성중립화장실..
칸막이만 잘 나뉘어있고 순서만 잘 지킨다면뭐.

이거 읽어보신 분 많으실 거예요. 혹자는 듀나게시판에 올라온 실화라고 하기도 하는데 아무도 작가가 누군지 확실하게는 몰라요. 실화인지 소설인지도. [그래도 월급나오면 감자탕 사줄께.] 흑 ㅠ.
*     *     *

그 애

                    작자 미상


우리는 개천쪽으로 문이 난 납작한 집들이 게딱지처럼 따닥따닥 붙어있는 동네에서 자랐다. 그 동네에선 누구나 그렇듯 그애와 나도 가난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내 아버지는 번번히 월급이 밀리는 시원찮은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그애의 아버지는 한쪽 안구에 개눈을 박아넣고 지하철에서 구걸을 했다. 내 어머니는 방 한가운데 산처럼 쌓아놓은 개구리인형에 눈을 밖았다. 그애의 어머니는 청계천 골목에서 커피도 팔고 박카스도 팔고 이따금 곱창집 뒷방에서 몸도 팔았다. 우리집은 네 가족이 방두 개짜리 전세금에 쩔쩔맸고, 그애는 화장실 옆에 천막을 치고 아궁이를 걸어 간이부엌을 만든 하코방에서 살았다. 나는 어린이날 탕수육을 못 먹고 짜장면만 먹는다고 울었고, 그애는 엄마가 외박하는 밤이면 아버지의 허리띠를 피해서 맨발로 포도를 다다다닥 달렸다. 말하자면 그렇다. 우리집은 가난했고, 그애는 불행했다.

가난한 동네는 국민학교도 작았다. 우리는 4학년때 처음 한 반이 되었다. 우연히 그애 집을 지나가다가 길가로 훤히 드러나는 아궁이에다 라면을 끓이는 그애를 보았다. 그애가 입은 늘어난 러닝셔츠엔 김치국물이 묻어있었고 얼굴엔 김치국물 같은 핏자국이 말라붙어있었다. 눈싸움인지 서로를 노려보다가 내가 먼저 말했다. 니네부엌 뽑기만들기에 최고다. 나는 집에서 국자와 설탕을 훔쳐왔고, 국자바닥을 까맣게 태우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사정이 좀 풀려서 우리집은 서울 반대편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친척이 소개시켜준 회사에 나갔다. 월급은 밀리지 않았고 어머니는 부업을 그만두었다. 나는 가끔 그애에게 편지를 썼다. 크리스마스에는 일년동안 쓴 딱딱한 커버의 일기장을 그애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애는 얇은 공책을 하나 보냈다. 일기는 몇 장 되지 않았다. 3월4일 개학했다. 선생님한테 맞았다. 6월1일 딸기를 먹었다. 9월3일 누나가 아파서 아버지가 화냈다. 11월4일 생일이다. 그애는 딸기를 먹으면 일기를 썼다. 딸기를 먹는 것이 일기를 쓸만한 일이었다.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애 아버지는 그애 누나가 보는 앞에서 분신자살을 했다. 나는 그 얘기를 풍문으로 들었다. 그애는 이따금 캄캄한 밤이면 아무 연립주택이나 문 열린 옥상에 올라가 스티로플에 키우는 고추며 토마토를 따버린다고 편지를 썼다. 이제 담배를 배웠다고 했다. 나는 새로 들어간 미술부며 롯데리아에서 처음 한 미팅 따위에 대해 썼다. 한번 보자, 만날 얘기했지만 한번도 서로 전화는 하지 않았다. 어느날 그애의 편지가 그쳤고, 나는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고3 생일에 전화가 왔다. 우리는 피맛골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생일선물이라며 신라면 한 박스를 어깨에 메고 온 그애는 왼쪽다리를 절뚝거렸다. 오토바이사고라고 했다. 라면은 구멍가게 앞에 쌓인 것을 그냥 들고 날랐다고 했다. 강변역 앞에서 삐끼한다고 했다. 놀러오면 서비스 기차게 해줄께. 얼큰하게 취해서 그애가 말했다. 아냐. 오지마. 우울한 일이 있으면 나는 그애가 준 신라면을 하나씩 끓여먹었다. 파도 계란도 안 넣고. 뻘겋게 취한 그애의 얼굴 같은 라면국물을.

나는 미대를 졸업했고 회사원이 되었다. 어느날 그애가 미니홈피로 찾아왔다. 공익으로 지하철에서 자살한 사람의 갈린 살점을 대야에 쓸어담으면서 2년을 보냈다고 했다. 강원도 어디의 도살장에서 소를 잡으면서 또 2년을 보냈다고 했다. 하루에 몇백마리의 소머리에 징을 내려치면서, 하루종일 탁주와 핏물에 젖어서. 어느날 은행에 갔더니 모두 날 피하더라고. 옷은 갈아입었어도 피냄새가 배인거지. 그날 밤 작업장에 앉아있는데 소머리들이 모두 내 얼굴로 보이데.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그애는 술집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나직하게, 나는 왜 이렇게 나쁜 패만 뒤집는 걸까.

그애가 다단계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만나지마. 국민학교때 친구 하나가 전화를 해주었다. 그애 연락을 받고, 나는 옥장판이나 정수기라면 하나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취직하고 집에 내놓은 것도 없으니 이참에 생색도 내고. 그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면 가끔 만나서 술을 마셨다. 추운 겨울엔 오뎅탕에 정종. 마음이 따뜻해졌다.

부천의 어느 물류창고에 직장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등학교때 정신을 놓아버린 그애의 누나는 나이차이 많이 나는 홀아비에게 재취로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애가 둘인데 다 착한가봐. 손찌검도 안하는 거 같고. 월급은 적어. 그래도 월급나오면 감자탕 사줄께.

그애는 물류창고에서 트럭에 치여 죽었다. 27살이었다.

그 애는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남자였다. 한번도 말한 적 없었지만 이따금 나는 우리가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손도 잡은 적 없지만 그 애의 작고 마른 몸을 안고 매일 잠이 드는 상상도 했다. 언젠가. 난 왜 이렇게 나쁜 패만 뒤집을까. 그 말 뒤에 그 애는 조용히 그러니까 난 소중한 건 아주 귀하게 여길꺼야. 나한테 그런게 별로 없으니까. 말했었다. 그러나 내 사랑은 계산이 빠르고 겁이 많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애가 좋았지만 그 애의 불행이 두려웠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살 수도 있었다. 가난하더라도 불행하지는 않게. 하하하; 저는 누군가 화자의 성별이 특정되는게 싫었다던지 하는 이유로.. 혹은 불행을 이야기 하는데 연애감정이 꼭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잘라낸 줄 알았네요.

ㅠㅠ 제가 복붙을 하다 만 거였네요. 이제야 알았어요. 본문에 더 붙여놓을게요. 아이 쪽파르하다....

제가 읽었던 버전 붙여드립니다.. 퍼오고 퍼가는 와중에 누군가가 사족이라고 생각해서 잘라냈는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는 개천쪽으로 문이 난 납작한 집들이

개딱지처럼 따닥따닥 붙어있는 동네에서 자랐다.

그 동네에선 누구나 그렇듯 그 애와 나도 가난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내 아버지는 번번히 월급이 밀리는

시원찮은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그 애의 아버지는 한 쪽 안구에 개눈을 박아 넣고

지하철에서 구걸을 했다.


내 어머니는 방 한가운데 산처럼 쌓아놓은

개구리인형에 눈을 박았다.


그 애의 어머니는 청계천 골목에서 커피도 팔고

박카스도 팔고 이따금... 더 보기
우리는 개천쪽으로 문이 난 납작한 집들이

개딱지처럼 따닥따닥 붙어있는 동네에서 자랐다.

그 동네에선 누구나 그렇듯 그 애와 나도 가난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내 아버지는 번번히 월급이 밀리는

시원찮은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그 애의 아버지는 한 쪽 안구에 개눈을 박아 넣고

지하철에서 구걸을 했다.


내 어머니는 방 한가운데 산처럼 쌓아놓은

개구리인형에 눈을 박았다.


그 애의 어머니는 청계천 골목에서 커피도 팔고

박카스도 팔고 이따금 곱창집 뒷방에서 몸도 팔았다.


우리집은 네 가족이 방두 개짜리 전세금에 쩔쩔맸고,

그 애는 화장실 옆에 천막을 치고 아궁이를 걸어

간이부엌을 만든 하코방에서 살았다.



나는 어린이날 탕수육을 못 먹고 자장면만 먹는다고 울었고,

그 애는 엄마가 외박하는 밤이면 아버지의 허리띠를 피해서

맨발로 포도를 다다다닥 달렸다.


말하자면 그렇다.

우리집은 가난했고, 그 애는 불행했다.



가난한 동네는 국민학교도 작았다.

우리는 4학년때 처음 한 반이 되었다.


우연히 그 애 집을 지나가다가 길가로 훤히 드러나는

아궁이에다 라면을 끓이는 그 애를 보았다.


그애가 입은 늘어난 러닝셔츠엔 김치국물이 묻어 있었고

얼굴엔 김치국물 같은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눈싸움인지 서로를 노려보다가 내가 먼저 말했다.

니네 부엌 뽑기만들기에 최고다.



나는 집에서 국자와 설탕을 훔쳐왔고,

국자바닥을 까맣게 태우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사정이 좀 풀려서 우리집은 서울 반대편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친척이 소개시켜준 회사에 나갔다.
월급은 밀리지 않았고 어머니는 부업을 그만두었다.



나는 가끔 그애에게 편지를 썼다.



크리스마스에는 일 년 동안 쓴 딱딱한 커버의 일기장을

그 애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 애는 얇은 공책을 하나 보냈다.

일기는 몇 장 되지 않았다.

3월4일 개학했다. 선생님한테 맞았다.

6월1일 딸기를 먹었다.
9월3일 누나가 아파서 아버지가 화냈다.

11월4일 생일이다.



그 애는 딸기를 먹으면 일기를 썼다.

딸기를 먹는 것이 일기를 쓸만한 일이었다.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 애 아버지는 그 애 누나가 보는 앞에서 분신자살을 했다.

나는 그 얘기를 풍문으로 들었다.


그 애는 이따금 캄캄한 밤이면 아무 연립주택이나

문 열린 옥상에 올라가 스티로플에 키우는 고추며

토마토를 따 버린다고 편지를 썼다. 이제 담배를 배웠다고 했다.



나는 새로 들어간 미술부며 롯데리아에서

처음 한 미팅 따위에 대해 썼다.


한 번 보자, 만날 얘기했지만 한 번도 서로 전화는 하지 않았다.

어느날 그 애의 편지가 그쳤고, 나는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고3 생일에 전화가 왔다. 우리는 피맛골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생일 선물이라며 신라면 한 박스를 어깨에 메고 온 그 애는

왼쪽 다리를 절뚝거렸다. 오토바이사고라고 했다.


라면은 구멍가게 앞에 쌓인 것을 그냥 들고 날랐다고 했다.

강변역 앞에서 삐끼한다고 했다. 놀러 오면 서비스 기차게 해줄께.

얼큰하게 취해서 그 애가 말했다. 아냐. 오지마.



우울한 일이 있으면 나는 그 애가 준 신라면을 하나씩 끓여먹었다.

파도 계란도 안 넣고. 뻘겋게 취한 그 애의 얼굴 같은 라면국물을.



나는 미대를 졸업했고 회사원이 되었다.

어느날 그 애가 미니홈피로 찾아왔다.


공익으로 지하철에서 자살한 사람의 갈린 살점을 대야에

쓸어담으면서 2년을 보냈다고 했다. 강원도 어디의 도살장에서

소를 잡으면서 또 2년을 보냈다고 했다.



하루에 몇백마리의 소머리에 징을 내려치면서,

하루 종일 탁주와 핏물에 젖어서. 어느날 은행에 갔더니

모두 날 피하더라고. 옷은 갈아입었어도 피냄새가 베인거지.



그날 밤 작업장에 앉아있는데 소머리들이 모두 내 얼굴로 보이데.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그 애는 술집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나직하게, 나는 왜 이렇게 나쁜 패만 뒤집는 걸까.


그 애가 다단계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만나지마. 국민학교때 친구 하나가 전화를 해주었다.


그 애 연락을 받고,

나는 옥장판이나 정수기라면 하나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취직하고 집에 내놓은 것도 없으니 이 참에 생색도 내고.



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면 가끔 만나서 술을 마셨다.

추운 겨울엔 오뎅탕에 정종. 마음이 따뜻해졌다.



부천의 어느 물류창고에 직장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등학교때 정신을 놓아버린 그 애의 누나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홀아비에게 재취로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애가 둘인데 다 착한가봐. 손찌검도 안하는 거 같고.

월급은 적어. 그래도 월급나오면 감자탕 사줄께.



그 애는 물류창고에서 트럭에 치여 죽었다.

27살이었다.



그 애는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남자였다.


한 번도 말한 적 없었지만

이따금 나는 우리가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손도 잡은 적 없지만 그 애의 작고 마른 몸을 안고

매일 잠이 드는 상상도 했다.


언젠가, 난 왜 이렇게 나쁜 패만 뒤집을까. 그 말 뒤에

그애는 조용히 그러니까 난 소중한 건 아주 귀하게 여길꺼야.

나한텐 그런 게 별로 없으니까. 말했었다.



그러나 내 사랑은 계산이 빠르고 겁이 많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애가 좋았지만 그 애의 불행이 두려웠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살 수도 있었다.


가난하더라도 불행하지는 않게.

뒷얘기가 있었나요...? 그는 이미 저 세상사람이 되었는데 뒷얘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어.. 저는 지인이 카톡으로 긁어줘서 읽었던 글이네요. 저걸로 끝이 아니었어요.

생산직 이거저거 한2년 정도 일했고 지금 일하는곳은 생산직은 아니고 그런쪽에서 다치는 사람들 얼마나 오나 볼 수 있는 곳인데.. 사망만 따지면 그렇게까지 많은건 아닙니다. 지역마다,업종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주,월단위로 겪는건 손가락 잘린다든지 팔다리 부러진다든지 하는거.. 아무튼 그렇다 쳐도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건 사실..

네. 산재처리없이 죽거나 크게다치는분들 생각보다정말많아요..

설마요. 남자는 결국 죽었잖아요. 저렇게 쉽게 죽나요. 정말요?

누구도 가난하길 원치 않지만 문학에서만은 가난이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소재로 자주 등장해요. 이걸 어떤 통찰을 가지고 쓰고 싶은데 뭐라고 써야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가 않네요.

감자탕 사줄게란 말 넘 애틋하지 않나요 잉...

생산직 계열에서 일해보면 저런건 주,월단위로...겪는다는 말이있더군요.

이 이야기가 실화이든 소설이든 이런 종류의 삶은 항상 우리들 주변에 있죠.. 우리들 자신일 수도 있고.. 도깨비 보면서 이상하게 귓가를 맴도는 대사가 있었는데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또 생각나네요.

저 죽나요. 겨우 열아홉인데.

아홉 살에도 죽고 열살에도 죽어. 그게 죽음이야.

먹먹해지네요.

안녕하세요. 앉으면 글을 쓰고, 일어서면 사진을 찍는 열대어라고 합니다. 의도치 않았는데 하루에 두 개의 번개 후기 글을 작성하게 되었네요.

어제 번개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아침에 번개 후기 글을 남기고 다시 잠들어버렸습니다… 그 덕분에 머리손질을 못해서 모자를 쓰고 나갔지요. 처음 뵙는 분들도 있는데 예의가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면도냐 머리손질이냐의 선택에서 면도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린이 대공원은 작년 이맘때쯤 그때 당시의 여자친구랑 데이트 하러 가고는 한 번을 안 간 곳이라 혼자 괜스레 두근두근 하면서 갔는데요, 모인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으면서는 설렘 없이 정말 열심히 사진만 찍었던 거 같습니다.

주최자이신 새벽3시님과 산책나오신 솔로왕님을 제외하고 저와 신문안사요님과 알케미스트님의 카메라 기종이 소니 A7 시리즈라서 다들 도원결의 하는 느낌으로다가 재미나게 사진을 찍었던 거 같네요. 사실 처음엔 술이 덜 깨서 사진찍는데만 몰두한 느낌이라 죄송스러웠습니다.

사람이 무척 많았던 어린이 대공원은 정말로 걷기 좋았습니다. 날이 좋았고, 꽃들이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했고, 굳이 사진을 안 찍어도 오셨으면 참 좋았을 거 같아요. 바람이 따뜻했고, 햇살이 따뜻했으며 여기저기 커플들과 가족들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참으로 봄이었네요.

그러나 생각보다 꽃이 덜 피었고,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사진 번개는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했습니다. 어린이 대공원 근처가 건대이고, 뚝섬유원지인지라, 빨리 마무리된 사진번개의 아쉬움을 뚝섬유원지에서 치맥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치맥타임때는 화신님이 맥주를 사 들고 오셔서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떨면서 치맥을 즐겼고요, 해가 지는 풍경을 보면서 아름답게 사진 번개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사진번개 주최해주신 새벽3시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오늘 참석하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안 오셨던 분들은 아쉬우셨을꺼예요. 오늘 정말로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사진 번개 있으면 더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굳이 사진을 안 찍더라도, 좋은 카메라가 없더라도, 오늘의 솔로왕님처럼 산책한다는 느낌으로 오시면 좋을 거 같아요.

다음에도 사진 번개가 있으면 꼭 가고 싶을 정도로 저는 오늘 번개를 아주 만족스럽게 만끽했습니다. 다음에, 더워지기 전, 봄날에 또 사진 찍으러, 산책하러 가요. 감사합니다!

우왓 사진번개!
고생하셨습니다~

왕님 고생 많으셨지요ㅎㅎㅎ
그래도 와 주셔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새벽3시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열대어님도 고생많으셨습니다

전 피곤했는지 집에 가자마자 기절했네요 ㅎㅎ

다음에 또 꼭 뵙겠습니다ㅎㅎㅎㅎ

이틀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ㅋㅋ 다음에 또 뵈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ㅎㅎㅎ
오늘 뵈서 참 반가웠습니다!

ㅎㅎㅎ 체력 바닥나시겠어요
회복 잘 하시고~ 다음에 사진 출사 벙개 또 가시자구요 ㅋㅋ

오늘 오신 분들 다 재미있게 이야기해서 넘나 좋았고
새벽 3시님 진짜 수고 많으셨어요 :)

진짜 만신창이가 된 기분입니다ㅋㅋㅋ

반가웠습니다ㅎㅎㅎ
진짜 즐거웠습니다!

이틀 연속의 모임 고생하셨습니다 ㅎ

반가웠습니다 ㅋㅋ

한번쯤은 이렇게 스스로를 소개해보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앉으면 글을 쓰고, 일어서면 사진을 찍는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네용
잘 읽었어용 춫천

봄산책 같은 분위기였습니다ㅎㅎㅎ
같은 커뮤니티에서 같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참 좋았습니다

꿈만 같네요. 사진번개[email protected]!

취미가 맞는사람끼리 모이면 얼마나 할얘기가 많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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