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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동 목사, 이낙연 지지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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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익명 조회 869회 작성일 2021-08-30 14:15:3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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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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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낙연 후보를 지지하는 충청인 108인’(대표 장경동 목사)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현실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는 지난 26일 이 후보 지지선언문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차기 지도자로 누가 가장 적합한지를 검증하고 분별해내야 하는데, 이 후보만이 보수-중도-진보 진영 모두에게 가장 적합한 최적의 대통령 후보"라고 밝혔다.

(중략)

하지만 그는 ‘빤스 목사’로 불리는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와 의형제지간으로, 2019년 8.15 광복절에 광화문 집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비말을 공중에 퍼뜨리는데 앞장선데 이어,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집회에 연사로 참여하는 등 호남 출신이면서 대전에 자리잡은 反문재인 캠페인을 버여온 대표적인 극우기독교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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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거 장경동이 일부러 이낙연 멕이는거 아닙니까?

어쩐지 요즘 자꾸 문자 오더라...



* 토비님에 의해서 뉴스으로부터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21-08-30 15:21)
* 관리사유 : 뉴스게시판에는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된 매체의 기사만 게재 가능합니다 ㅋㅋㅋ 화이트리스트를 생각해보면
윾머게시판이 더 나았을지도 ㅋㅋㅋㅋㅋ

사실 이걸 뉴스 게시판에 올려야 하나, 유머 게시판에 올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낙연 후보한테 실례일것 같아 뉴스게시판에 올렸는데... 뉴스게시판에 화이트리스트 규정이 있는줄 깜빡 했습니다.

저 사람에 대한 호오를 떠나서 묘사하는 단어의 수위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굿모닝충청이군요. 저긴 뭐랄까.. 문 대통령을 아주 강력히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는 매체입니다. (좀 순화된 표현으로 써 보았습니다.) 균형감있게 보도하는 매체라고 보긴 어렵고요. 뭐 저도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긴 합니다만..

정교분리는 형식적으로 사상적/제도적 분리이지.. 교단이나 교계 지도자가 지지선언 하고 말고에 갈리는 문제는 아니에요. 제도안에서 하는 거라면, 이보다 더 나아가서 기독사회당을 만들든 기독민주당을 만들든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세속국가에서)에서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아 에어장은 또 다른 사람이군요

개인적으로는 진정한 "교"는 찾아보기 힘들고 "정"을 취하고 싶은 자들이 "교"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체 뭐죠 이거?

정교분리...는 옛말이고 정교합일이 이시대의 트렌드가 아닐까..

민주당 경선 후보에게 민주당 지지층이 반대하는 사람이 지지선언을 하면...
만약, 조국이나 김어준이 윤총장 지지선언 하면 어떤 반응일까도 상상해 봅니다. ㅋㅋ

이거 이낙연 비토그룹에서 계속 올리는 뉴스이지요. ㅋㅋㅋ

6월6일 현충일
쉬셨지요?
전.....일 했어요 ㅜ ㅜ
5시 3분에 알람소리 듣고 일어나서
문 열고 나왔다가 안개도 이쁘고 새소리도 이쁘고ㅋ
그런대 대게 아침에 새소리가 진짜로 이뻐요!
99프로 원본이며 중간 이슬비? 내리는것 같아서
카메라 보호 차원에서 화장지로 살짠 덮어 놓음
그 부분만 편집 했고요 마지막 부분만 부분부분 자름
저희 아버지가 천식이 있어서 침 뱉는 소리도 짤랐네요 ㅋㅋㅋ
화면이 이뻐서 검정화면은 없습니다.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영상이 이뻐서요 전부 살렸어요
그리고 주무시기전 밝으면  폰 뒤집으면 되니까요 !!
https://youtu.be/gxBPWkts2eA



대원군의 집권명분은 그가 왕의 친부이며 왕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그 명분은 결국 왕이 성인이 되면 박살날 명분이었죠
10년의 집권기간동안 여러가지 일들을 해왔지만 끝내 그는 그 명분 외의 자기가 권력을 잡을 명분을 만들진 못했습니다. 송시열 이후 최초로 "대로"의 칭호를 얻긴했습니다만 그 칭호를 얻은 지 4개월만에 고종의 카운터펀치를 맞고 나가떨어지고 말았으니깐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 10년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10년의 기간동안 그는 종친들을 정계에 등용하면서 자신의 친형인 흥인군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종친들이 흥선군의 편을 드는 상황을 만들었고 세도가문 (노론시파에 해당합니다. 지난번에 글을 잘못 썻었습니다.)을 포함한 노론게열뿐만 아니라 다른 정파사람들을 많이 찾아 등용했고 서얼같이 신분상 차별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많이 써먹었죠
이러한 대원군의 행보는 그의 정적들에게 공격의 빌미가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대원군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반대로 고종에게는 큰 위협중 하나였고요

탄핵으로 실각한 이후 대원군의 행보는 간단합니다. 그는 재집권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와도 손을 잡는 걸 마다하지 않았으며 재집권을 위해서라면 역모를 꾀하는 것조차 서슴치 않았습니다.

간단하게 살펴보면

-> 1881년 이재선역모사건이 터집니다. 대원군이 자신의 서장자인 이재선을 고종대신 왕위에 올리려다가 사전에 발각된 사건으로 이재선과 그 일에 연루된 사람들이 죽어나갑니다. 이재선은 고종이 제주로 귀양보내는 것으로 마무리지었으나 계속해서 상소가 올라오자 사약을 내립니다. 대원군은 왕의 친부라는 이유로 면책

-> 1882년 임오군란이 터지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이를 기회삼아 대원군이 재집권하는 데 성공합니다. 집권명분은 군란의 소요를 막는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군대편제를 구시대로 돌리면서 자신의 집권을 노렸지만 청나라가 개입하여 대원군을 납치함으로써 한달만에 집권의 꿈은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는 데 이 정변의 주도세력들은 대원군의 귀국을 추진합니다. 개화파가 되었든 수구파가 되었든 외세가 되었든 혹은 일반 민중들이 되었든 한가지 특징이라면 모두 대원군을 전면에 내세우려고 했다는 데 있습니다. 청나라에 묶여있었던 이때를 제외하면 대원군은 언제나 콜을 외쳤고요(..)

-> 1885년 3년만에 조선으로 귀국한 대원군은 2년뒤 1887년 위안스카이 (원세개)와 공모하여 고종을 폐하고 자신의 장남 이재면을 왕위에 앉힌 뒤 섭정을 하려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대원군과 이재면은 왕의 친부 친형이라는 이유로 또 면책됩니다.

-> 1894년 근성가이 대원군은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동학농민운동을 빌미삼아 재집권을 노립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고종의 밀서를 위조했다는 혐의도 갖습니다..(..) 그걸 빌미삼아 이번엔 이재면의 아들 즉 자신의 손자이자 고종의 조카인 이준용을 왕위에 앉히려고 합니다만 실패합니다. 이준용의 경우 이재선이나 이재면과 달리 본인부터가 야심이 대단해서 자기라고 못할 게 뭐가 있느냐?라는 겁없는 말을 함부로 하고 다녔습니다. 결국 이준용은 사형을 선고 받습니다만 대원군이 떙깡을 부리는 바람에 결국 없던일이 됩니다.

-> 이후로도 이준용은 일본공사관에 들락날락거리면서 왕이 되려는 야심을 포기하지 않았고 덕분에 고종은 이준용은 물론이고 그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친형인 이재면에게도 엄청난 증오심을 갖게 됩니다. 대원군은 이미 이전부터 극렬하게 척을 지고 있었고요

-> 1894년 갑오개혁때 일본이 얼굴마담으로 대원군을 내세웁니다. 드디어 꿈을 이뤘다고 기뻐한 대원군을 바로 콜을 외치지만 실권 없는 허수아비가 되었죠(..) 결국 실권은 고종도 대원군도 아닌 국군기무처라는 기관이 갖고 있었고 그 기관의 책임자는 김홍집이었습니다. 네 그냥 얼굴마담으로만 쓰였던거죠 결국 얼마 안가 삼국간섭이라던가 일련의 일들로 인해 일본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갑오개혁도 물거품이 되고 대원군의 (얼굴마담이지만) 집권도 물거품이 됩니다.

-> 그 외 을미사변에도 연루되어있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거기까진 잘 모르겠으니 패스

-> 앞서 설명한대로 누가 정권을 잡으려하든 언제나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려고 할 만큼 흥선군은 (여러 의미로) 조선의 슈퍼스타였습니다-0-
그리고 대원군 역시 그 세력이 누구든 자신의 집권을 도와준다면 그 누구와도 손을 잡았쬬

고종이나 대원군이나 서로가 서로를 지목해서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고종 입장에선 친부와 싸우는 불효자라는 소릴 들어선 안되었고 (조선말이라곤 하지만 엄연히 조선시대였으니..) 대원군 입장에서도 왕을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 없었죠 아무리 친부라해도 신하의 입장이었으니깐요

결국 이 둘이 이용한건 명성황후였습니다. 고종은 대원군을 견제하기위해 명성황후를 앞장세웠고 대원군 역시 고종을 직접적으로 공격못하니깐 허구헌날 명성황후에게 쉐도우복싱을 했죠. 일반 백성들의 경우 자기들 고혈 짜고 사치를 피는 명성황후가 죽도록 미웠기때문에, 개화파 입장에선 자기들이 생각하는 개화를 위해선 친청수구파였던 명성황후를 견제하기 위해, 외세는 외세대로 자기들의 상황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대원군을 앞장세웠습니다. 딱 그림이 되자나요?(..)

권력욕에 눈이 먼 대원군과 그런 대원군을 상대로 명성황후를 이용한 고종 그리고 그 틈에껴서 온갖 사치를 다 하면서 백성들의 고혈을 짜는 명성황후까지 나라가 아주 정의롭습니다 그려 결국 이렇게 분열된 왕실은 외세 (일본 청나라 러시아)가 이용해먹기 딱 좋았고 결국 그 마지막 결과는..
   네. 어느 쪽이든 일본의 입이 돼준 건 사실입니다. -_-a 그래도 죽이기까진 마음에 걸려서였는지 다른 이유였는지 늦었죠.
허허 그 드라마 참 (...)... 근영이는 참 예뻤는데요

제가 알고 있기론 고종과 명성황후 사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는데, 명성황후가 낳은 왕자가 항문이 없는 기형으로 태어났고, 이를 해결하려면 칼로 째어 인공 항문이라도 만들어 줘야 했는데, 대원군이 "왕자의 몸에 누구도 칼을 댈 수 없다. 탕약으로 해결해 보라" 라는 순 억지를 피우는 바람에 왕자가 죽어버렸고, 이로 인해서 명성황후는 대원군과 같은 하늘을 지고 살 수 없을 정도의 척을 지게 되었다...

뭐 대충 이런데 이게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

ㅋㅋㅋㅋ

아 그러고보니 그때 대원군을 궁으로 데려와서 대원군이 주도했다라고 뒤집어 씌우려했다는 말도 들었던거 같습니다. 문제는 예상시간보다 더 늦어서 볼 사람 다 봤다는 게 문제였지만..(..)

하나 좀 고구마같은 이야기를 해주자면 드라마 명성황후에서는 대원군은 그 일을 간파하고 어떻게든 그 자리에 안가기 위해 노망난척 시간 끌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 해가 뜨면 쟤네들이 설마 대놓고 명성황후 못죽이겠지하면서요..(..) 진짜 미화의 끝판대장 드라마..

을미사변은 대원군이 궁에 도착하고 시작됐고, 그 명분을 줬죠 뭐. 이준용을 살려주는 걸로 거래한 모양인데... 뭐 그렇습니다

전 기춘대원군 말씀하시는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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